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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의 대화] '사라진 밤', 'Copy Room', '하루'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1. 10. 9. 17:49

현실과 픽션, 그 속의 아이러니

성희롱과 단순노동에 노출되어있는 직장여성의 고군분투이야기 카피룸’, 살인보다 더 잔인한 중년여성의 노동일상을 그린 영화 사라진 밤’, 노년여성의 행복한 하루를 그린 영화 하루와 함께 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이번 10 8일 토요일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사라진 밤차성덕 감독과, ‘하루한재빈 감독이 함께했다.



질문자
1_ '사라진 '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죽인 것처럼 표현되었는데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오히려 죽은 남편이 아내를 위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부분이 궁금합니다.

차성덕 감독(이하 차 감독)_ 영화 앞부분에 주인공이 고시원에서 통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남편의 손길 이후에 주인공은 비로소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주인공 일순에게 어떤 위로를 주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남편과 아내가 사이가 나빴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은 영화 속 일순과 남편은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가 있었기에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사이였을 것입니다.   제가 의도했던 부분은 남편으로 자행되는 일대일 폭력이 아닙니다. 일순을 비극으로 내몬 것은 바로 이사회의 폭력, 사회적 시스템인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부각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일순이 남편의 폭력 속에 있었다는 것은 영화 속에서 의도한 점이 아닙니다.


 

질문자2_ 영화 하루를 보면서 주인공 할머니께서 참 연기를 잘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어떻게 섭외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재빈감독(이하,하 감독)_ 할머니 같은 경우 노인정에서 직접 오디션을 통해 뽑았습니다. 할아버지 같은 경우는 복덕방 할아버지를 섭외했습니다. (모두 하하하) 정말 연기 잘하시죠?


 

질문자3_ 영화 사라진 밤중간에 기독교인들이 남편을 잃은 일순에게 기도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일순은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어떻게 보면 믿는 자들의 느닷없는 행위로 보여졌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일순 스스로가 기독교인들이 위로하며 불렀던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이 아이러니 했습니다. 어떤 의도인가요?

차 감독_ 제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자체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일순에게 위로하는 기독교인들처럼, 우리는 상처받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위로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위로방식이 그 당사자의 입장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방식의 위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생각하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후 일순이 부르는 찬송가는, 자기 스스로의 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스스로의 위로와 말들이 어느새 일순에게 와 닿았을 것이라 생각하여 이 장면을 넣었습니다.



질문자4_하루에서 할머니가 귤을 떨어뜨린 후에 할머니가 상회에 가서 4개의 귤을 사는데 서비스를 받잖아요, 그 의미가 있나요?

한 감독_ 영화 속 할머니가 중간에 낮잠을 자기도 하고, 육교에서 귤을 떨어뜨리기도 하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실수를 하고 난 뒤 할머니에게 서비스 이 생기는데요, 이 실수를 통해 운명처럼 내 자신을 위해 귤을 줄 수 있게 되고, 전화위복으로 할아버지에게까지 귤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는 장치입니다.


 

질문자5_ '하루'에서 육교에 있는 소녀가 그림일기 같은 것을 비행기로 접어 던지는데요, 잘 이해가 되지않습니다.

한 감독_ 할머니는 이날 하루를 통해 90년의 일생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 하루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날이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는 날이기도 합니다. , 할머니에게 이날은 특별한 하루입니다. 그림일기는 할머니의 일생을 보여주는 그림들이구요, 삶의 짐이나 여러 사건들이 적힌 그림일기를 던지면서 마음의 짐도 던져버린다는 의미입니다. 할머니의 의지를 표현한 장면입니다. 


 

 

  영화 하루속 할머니가 과거의 자신에게 귤을 전해주는 장면에서 마치 과거의 자신을 다독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 동안 나는 단 한번이라도 과거의 나를 다독여준 적 있을까. 혐오하고 후회하기만 했던, 마주보고 싶지 않은 과거의 나에게 나는 어떤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모두 괜찮다고 말한다. 힘들었던 시절의 나도, 사랑을 하는 설렘 가득한 나도, 지금의 초라한 나 조차도. 유쾌하게 그려낸 할머니의 하루는 관객들 마음도 행복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노동문제를 다룬 <4천원 인생>이라는 책이 생각나는 영화 사라진 밤, 살인이라는 탈을 쓴 여성노동잔혹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남편의 죽음에도 담담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일순을 통해, 주인공이 처한 극한의 문제는 남편의 죽음 혹은 살인 누명이 아니라 중년여성이 노동하기 힘든 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영화는 남편의 일대일 폭력이 아니라, 취업의 기회도, 업종의 선택도 한정되어있는 사회적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처녀라는 젊은 아가씨에게 직장을 뺏기는 장면에서는, 취업의 문제가 중년여성뿐 아니라 젊은 여성에게까지 전이되고 있는 노동의 보편적문제라는 점을 지적한다. 살인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지만일순의 모습은 보편적중년여성이 갖는 열악한 노동현실이다. 이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영화 사라진 밤은 잊혀진 일순의 기억처럼, 사회가 지우고 있는 여성노동문제를 직접적으로 비추고 있다. 그래서 더욱 픽션 같은 아이러니까지 낳으며.

 

-기자단 황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