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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실이 감독과의 대화] 당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찜찜함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2. 9. 21. 11:30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작은 움직임이 모여 큰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될 것입니다.”
 
제6회 여성인권영화제 첫날 상영된 <은실이>는 개봉 초부터 ‘애니메이션 판 <도가니>’라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은실이>는 지적 장애인인 은실이의 죽음과 남겨진 그녀의 아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시골 마을 공동체에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부를 알 수 없는 아기는 은실이에게 직ㆍ간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던 마을 사람들로부터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고, 그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에 의해 은실이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주인공 스스로를 포함해, 가해자였음을 깨달아가는 영화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임에도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충격과 공포를 느끼게 했다. <은실이>의 공동연출을 맡은 김선아ㆍ박세희 감독이 영화제를 찾아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Q : <은실이>가 실화인가요?
 
박세희 조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이주여성단체에도 방문하고 지적장애인들 돌봐주시는 의사에게도 자문을 구했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은실이>가 실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희가 수집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서 마을과 캐릭터를 창조하고 원하는 목표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은실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 실화를 연상시켰을 것 같습니다.
 
Q : 영화가 열린 결말로 끝난 것 같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걸 많이 남겨두셨습니다. 결말에 대해서 정확히 말을 안 해주신 이유가 있나요?
 
김선아 어느 정도는 결말을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은실이가 낳은) 아이가 어떻게 커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은 관객들의 몫입니다. 미래를 희망적으로 본 사람은 그 아기가 은실이와 같은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관적으로 본 사람은 아이가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태어나서 앞으로의 삶이 무척 걱정된다고 하시기도 합니다. “현실 고발이라기보다는 타인에 대한 편견과 모순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Q : <은실이>를 통해서 여성인권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었나요?
 
김선아 영화를 만들면서 여성인권이나 현실고발, 사회적 의무감에 만들진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어두워서 싫었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편견,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 여성임에도 여성에게 갖는 편견, 성(性)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순, 본인들의 욕망과 콤플렉스에서 파생되는 파국 등이었어요. 인권문제라기보다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박세희 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죄의식이 희석되는 것 같은 것을요. 저희들의 주제 의식에 있어서 다방면에서 공동체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Q : 영화에서 다양한 형태의 폭력들이 나오고, 그 폭력을 대하는 캐릭터도 다양합니다. 방관자도 있고, 개입하려 노력하는 사람도 보입니다. 그 중 이주여성이 은실이의 폭력에 개입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주여성 캐릭터가 인상 깊습니다.
 
김선아 씨족 중심인 시골 공동체 사회에 베트남 이주여성이 시집을 왔어요. 그 이주여성이 이방인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방인으로서 은실이와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은실이와 약간의 동질감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Q :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으면 영화의 내용이 더욱 충격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워낙 내용이 충격적이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나요?
 
박세희 (은실이가 혼자 출산하는) 첫 장면이나 성폭력 장면 등이 충격적입니다. 첫 장면을 실사로 촬영한다면 1년 8개월 제작 기간 상의 문제도 있었고, 어린이의 성추행 장면도 아역 배우에게 연기 지도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고민이 있습니다. 여러 문제로 애니메이션이어야만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두운 세계에 대한 새로운 묘사도 애니메이션으로 할 수 있습니다.
 
Q : 앞으로 두 감독님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선아 각자 다른 걸 준비하고 있습니다. <은실이> 영화를 하면서 여성과 성(性)에 관한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성경과 성(性)’이라는 주제로 시나리오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 <은실이>처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센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박세희 단편이고 밝은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입니다. (은실이를 통해서) 어두운 감정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졌고, 여성들 사이의 감정들, 불안증, 드러나지 않은 공포심 같은 것을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하게 될 작품은 어두운 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의 이 불편한 감정을 언젠가는 다시 기억하고 꺼내는 영화가 되었으면”
 
Q : 최근에 <도가니>나 <은실이>같은 영화들이 많습니다.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불편함과 분노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곧 그 감정들이 사라집니다. 이 영화를 보고 현실을 살아가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코멘트가 있으신지요?
 
김선아 <은실이>를 <도가니>와 많이들 비교하십니다. 하지만 <도가니>는 가해자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었다는 겁니다. 분노하고 끝내잖아요. “저 나쁜 놈들~”하고 맙니다. 저희는 ‘그 가해자가 당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속에 여러 캐릭터를 심은 것이 당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관객이 느끼는 것이 분노가 아니라 찜찜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순간이라도 그 찜찜함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영화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찜찜함이 쌓인다면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은 움직임이 모여서 큰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되지 않을까요.
 
박세희 영화가 주는 불편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영화가 주는 역할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죄책감을 늘 지니고 있겠어요. 하지만 마주했던 죄책감을 한번 더 생각해보았으면 해요. <은실이>는 개개인을 비난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오늘의 이 불편한 감정을 언젠가는 다시 기억하고 꺼내는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김수희 이지연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