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톡톡

[피움 톡!톡! 현장 스케치] Fiwom Zoom Out: 진짜 사나이의 재구성 Talk!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1. 10. 9. 14:02


  영화제 나흘 째, 8일 저녁. 5회 차 상영을 마친 상영관 안에서는 웃음소리와 한숨소리가 번갈아 터져 나왔다. 학원 폭력을 겪는 소년들의 관계에 대해 다룬 <쫑>, 강박 속에 길러진 한 남자의 일생을 다룬 <남자는 울지 않았다>, 일상생활 속의 남자를 관찰한 <가족오락관>으로 이루어진 [피움 줌아웃, 진짜 사나이의 재구성] 섹션을 관람한 관객들과 게스트들의 [피움 톡톡]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 게스트 <쫑>의 안주영 감독, 여성인권영화제 자문위원인 동국대학교 유지나 교수와 함께 진행된 [피움 톡톡].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들을 웃게 하고 생각하게 했을까.



 




진행

란희
활동가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램팀)

게스트
안주영
감독 (<쫑>), 유지나 교수(여성인권영화제 자문위원, 동국대학교 교수)
[진짜 사나이의 재구성] 섹션을 관람한 모든 관객 여러분




Talk을 시작하며...


란희
여성인권영화제는 여성에 대한 관심뿐만이 아니라 남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여성이 여성이기에 억압 받듯이, 남성도 남성이기에 억압 받고 있어요. 이런 남성들에 대해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기 위해 준비한 [피움 줌아웃, 진짜 사나이의 재구성].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러한 섹션이 준비되었는지, 관객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 위해 이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유지나 여성들은 남성에 대해 잘 몰라요.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잘 모르듯이. 여성들은 학습된 이미지로서의 남성, 혹은 환상 속의 남성에 대해서만 생각하죠. 여성과 남성이 서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남성 감독들이 만든 남성에 대한 영화들(<남자는 울지 않았다>, <가족오락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Talk 1. <쫑>, 남성의 유년기 - 학원 폭력과 권력 관계


란희
일단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요. <쫑>의 안주영 감독님. 영화를 만들게 되신 이유라든지, 영화에 사용된 상징들에 대해 많은 관객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안주영 실제로 앞다리가 잘린 개를 본 적이 있어요. 그 기억이 너무 강렬했죠. 나에게 각인된 이 이미지를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앞다리가 없다는 것,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했고요.

란희 남성에게 있어서의 유년기는 어떤 의미일까. 그 유년기를 보내는 학교에서의 생활은 어떤 것일까. 그 관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영화였던 것 같아요. 관객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궁금한 점이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점 있으세요?

관객 <쫑>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 소년이 짝 대신 폭력의 굴레로 들어가게 되는데, 후에는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안주영 개인의 행위가 폭력의 타개책이 되기 보다는 폭력의 관계가 전이되어가는 모습으로 해석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란희 폭력의 대물림, 폭력적인 상황의 학습에 대해 보여주신 것 같아요. 이러한 상황들은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죠. 학교, 군대 등 남성들의 사회생활은 권력의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안주영 처음부터 학원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남성들의 관계 속에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죠. 저는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들처럼 또래들 사이의 물리적 폭력을 경험해본 기억은 없어요. 하지만 만약 내가 그 상황 속에 있다면 어떨까. 무엇이 가장 괴로울까. 고민하다보니 물리적 폭력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외로움. 그 심리적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유지나 한국의 영화들은 폭력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지금의 시대는 군사독재 시대가 아니지만, 지금의 한국을 대변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병영 국가'라는 건 부정할 수 없죠. 그 영향 때문일까. 영화 속에서도 폭력은 가볍게 다뤄지죠. 폭력에 대한 용인 지수가 높아요. 가볍게 치고 박고 욕설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죠. 남자들은 폭력적인 문화 속에서 길러지고 있어요.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폭력은 마치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남성들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죠. <쫑>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안쓰러워요.

관객 <쫑>을 보면서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도 상하 관계가 형성되고 그 속에 권력의 차이가 존재해서 힘을 휘두른다는 것, 여성과 남성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폭력과 권력의 문제로도 확장시켜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영화 속에서 "진짜 발톱을 세워야 할 곳에는 세우지 못한다"는 장면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개인을 억압하고 있는 권력에 대해 발톱을 세우지 못하고 더 약한 존재에게 발톱을 세우게 되는 모습들. 폭력적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고 끊임없이 전이되어가는 모습이 <쫑>에 나타나서 마음이 씁쓸했어요. 주인공은 왜 마지막 장면에서 그 폭력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버렸을까, 하고 생각도 했고요.

안주영 주인공 아이는 폭력의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폭력적 관계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순진하게 생각하다가 자신도 결국 그 폭력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버리게 된 거죠.




Talk 2. 학습된 남성, 세뇌된 남성, '프로그램'화 된 남성, 우리 모두의 탈(脫)프로그램화!


유지나 미셸 푸코의 개념 중에 '프로그램 되었다'는 것이 있어요.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주입 당해서 형성된 의식들. 개인의 도덕과 윤리가 아닌 어릴 때부터 학습된 것들에 의해서 자아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이라는 거죠. 부모, 사회, 종교, 문화 등에 의해 프로그램은 형성되요. 그렇게 한 번 프로그램이 형성되면 벗어나거나 변화하기가 어렵죠. 그것이 개인에게 불리한 것이어도. 남성들의 경우는 권력과 폭력의 관계 속에 프로그램화 되요. 이러한 프로그램의 세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탈(脫)프로그램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거죠. 이것이 개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란희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것 역시도 프로그램이 주는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앞선 <쫑>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나왔듯이, 개인의 힘으로 프로그램을 해체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심어주는 것조차도 프로그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프로그램의 진정한 무서움이 보이죠.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게 되니까요. '네가 프로그램 속에 있는 건 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야? 사실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는 것 아냐?' 그런 질문들. 전체적인 구조나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힘을 합쳐야 하는데 말예요.

관객 '탈프로그램화'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구체적인 방법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유지나 현실에서 남성과 여성의 권력 차이를 생각할 때면 역사를 회고하게 되요. 한국의 역사 속에서 여성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권을 위해 했던 노력들이 너무 적어요. 한국의 여성들에게 주어진 법적인 권리들은 서구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부여된 것들이지 투쟁을 통해 획득해낸 것이 아니죠. 내부의 고민과 인식없이 외부적으로 법적 인격체로서의 권리가 주어진 거죠. 오히려 내적인 주체성을 위해 노력했던 여성들은 비난을 받았죠. '똑똑한 여자들은 너무 나서서 안 된다'라는 생각들. 그럼에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어요.  양성평등지수가 낮은 한국에서 여성인권영화제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죠.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주체성을 인식하고 자기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매 순간을 도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이죠.

란희 <남자는 울지 않았다>의 울지 않도록 프로그램화 된 주인공 남성이 끝까지 그 강박을 깨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더라면, 사회가 프로그램한 '강한 남자'로 남았겠죠.

유지나 여성들이 남성들의 기준에 맞춰 남성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자랐듯이, 남성들도 강한 남성으로 '길러졌다'고 생각해요. 그런 남성들을 기른 것은 어쩌면 여성들일 지도 모르죠. 서로가 서로에게 프로그램을 강요하면서. <남자는 울지 않았다>에서는 그러한 모습들이 보여지죠. 무척 상징적이고 의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Talk 3. 대안적 남성에 대해 이야기 하자, '진짜 사나이'란?


란희 <남자는 울지 않았다>에서는 프로그램 속에서 태어난 남성의 모습, <쫑>은 그렇게 프로그램 속에서 자라나는 남성의 유년기, <가족오락관>에서는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강박 없이 편안하고 솔직하게 생활하는 가족 속에서의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어쩌면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말하고 싶은 대안적 남성의 모습은 <가족오락관>의 주인공이 아닐까요.

유지나 <가족오락관>의 주인공은 아주 귀엽죠. 남자들의 솔직한 일상, 부모와의 관계, 생활 속의 모습이 드러나서 좋았어요.

란희 이 섹션은 '진짜 사나이의 재구성'인데, 여러분들은 모두 '진짜 사나이'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누구일까요?

유지나 체 게바라? 달라이 라마? 간디? 전 섹시한 사상을 가진 남자가 좋아요. 해방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고 그걸 다른 사람들 모두와 나누려고 하는 공동체적인 남자.

관객 글쎄요. '진짜 사나이'라는 말도 어떤 틀 속에 프로그램화 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요. 여성들이 보기에 남성들은 많은 것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런 남성들의 관계 속에서도 소외되어 버리는 남성은 여성/남성 모두에게 버림 받는 진짜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사나이'라는 틀 속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멋진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싶어요.

관객 맞아요.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타인도 함께 돌보고 보듬을 수 있는 사람들의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성/남성을 떠나서 서로를 배려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돌봄'의 문화가 되기를 바라요.

유지나 이왕이면 이 좋은 가치를 특정 성(性)에 규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돌봄'은 여성들의 가치로 인식되어 왔지만, 이제는 남성들에게 좋은 기회를 양보하고 싶네요.



Talk을 마치며...


란희 자신의 위치와 성장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의미로 이 톡을 마련했어요. 소감은 어떠신가요.

유지나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엔 이런 서문이 있어요. 나는 좋은 아버지, 좋은 선배, 좋은 아들이었을지는 몰라도 한 번도 나 자신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누구인지 모르게 하는 프로그램 속에서 자라고 있는 남성들. 여성들의 남성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남성들은 여성들과 제대로 감정을 교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주영 좋은 자리에서 영화를 상영하게 되고 뜻하지 않게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까지 마련되어서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란희 여성인권영화제는 늘 남성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남자의 인생 전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조선남자인생잔혹사? 라든지 (웃음) 여성인권영화제가 진정한 '돌봄'의 영화제가 될 수도 있겠네요. 좋은 이야기를 함께 나눠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취재 & 정리 _ 우리 (피움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