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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를 사랑한 유쾌함; "두 번째 계절" 그리고 "평범한 나의 가족"

피움 2012. 9. 20. 22:29

2012.9.20 3회차 영화  


두 번째 계절                                     평범한 나의 가족

Second season, 2012                                    Mon arbre, My tree, 2011

 

한국, 다큐멘터리, 40분                                   프랑스, 드라마, 48분

감독 영                                                        감독 베레니케 안드레


 

 남자 이야기, 결혼 이야기, 취직 이야기..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벌어지고 있다. 소소한 연애 이야기에서부터 앞날에 대한 걱정거리까지 거릴 낄 것 없이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에 아마도 이 자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러나 이 자리가 조금씩 불편해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남자 친구 이야기가 오갈 때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리는 한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화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까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들 중에는 그녀에게 여자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각자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가 하는 연애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삶이 이야기되어서는 안 될 비정상의 삶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친구들 사이에서 뼈저리게 느껴가는 중이다. 그녀에게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그저 유쾌하지만은 않은 어쩐지 조금은 멜랑콜리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첫 번째 계절

 여성, 장애인, 퀴어, 등등.. 이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양 언저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 그들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멜랑콜리한 삶을 동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밝게 살아가기에는 그들에게 펼쳐지는 삶은 그리 녹녹치 않기 때문이다. ‘정상적이지 않은어딘지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그들만의 고민과 투쟁의 역사가 묻어있다.

  6회 여성인권영화제 탐정3회차 상영작인 두 번째 계절(, 한국, 2012, 다큐멘터리)”평범한 나의 가족(베레니스 앙드레, 프랑스, 2011, 드라마)”에도 소수자의 삶에 담긴 멜랑콜리함을 읽을 수 있다. “두 번째 계절의 주인공 조수양씨는 중증장애 여성이다. 26년간 살아온 시설에서는 인간다운삶을 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인가 시설에서 인가 시설로 바뀌고 나서는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에서부터 여성이기에 겪었던 불편한 경험들은 그녀를 답답하고 우울하게 했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첫 번째 계절은 중증장애여성으로서 겪었던 멜랑콜리의 시절이었던 것이다.

 

      

 

 사실 두 번째 영화 평범한 나의 가족은 표면적으로 성소수자나 성소수자의 자녀가 겪는 어려움이 대두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열 살의 어린 소녀 마리가 자신의 복잡한 가족 나무를 그리며 발랄하게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두 명의 게이 아빠와 두 명의 레즈비언 엄마, 그리고 각각 그들의 배우자들까지 전혀 평범치 않은 가족 구성을 아주 평범하게 그려가는 그녀의 발랄함과 내 한 몸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도 가정이 파탄 나고 사회가 붕괴할 것이라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의 분노와 두려움이 내 머릿속에서 너무나 큰 격차를 그려냈기 때문일까.

 

 

 

두 번째 계절

 그러나 소수자의 삶을 한 없이 어둡고 힘겨운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것 또한 하나의 오류일 것이다. 소수자를 다루는 특히, 소수자의 인권을 다루는 다양한 매체들 대부분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들의 멜랑콜리하고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한한 삶의 고통을 보여주는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매체들을 반복적으로 접하고 있노라면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 자신에게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소수자라는 이유 하나로 내 삶을 즐겁게 꾸릴 권리를 빼앗긴 듯 말이다. 소수자의 삶이란 언제나 차별과 고통 속에서 그것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내 삶이 만약 유쾌하게 흘러간다면 그것은 내가 처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는 무한한 멜랑콜리가 나의 심장을 검열한다.

  

                

 

 그러나 두 편의 영화는 멜랑콜리의 무한궤도로 나를 몰아넣지 않는다. 두 편의 영화는 각자 소수자로 살아가기에 경험하는 멜랑콜리를 가슴 속에 켜켜이 정리해두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유쾌함을 만들어 간다. “두 번째 계절의 주인공 조수양씨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주거지원 프로그램에 뽑혀 꿈에 그리던 독립을 이루게 된다. 시설에서 나와 홀로 살게 되었다는 것으로 그녀의 이야기가 (뜬금없이) 밝게 끝났더라면 이 영화는 그리 깊은 의미를 전달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녀가 독립하는 과정에는 장애인의 이동권, 주거권 등 다양한 인권 쟁점이 담겨있다. 그녀는 독립을 이루었지만 그녀의 삶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같이 끊임없이 요동친다. 사회 속에서 그녀 자신의 개인사를 넘어 장애인 인권 활동가로서 타인과 공유하려는 노력을 통해 그녀는 이유 있는유쾌한 두 번째 계절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평범한 나의 가족의 마리는 그녀를 보는 내가 멜랑콜리함을 다시 곱씹어 볼 정도로 현실감 떨어지는 발랄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며 중간 중간 보여주는 그녀의 발랄함은 밑도 끝도 없는 발랄함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위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족과 거리가 먼 성소수자 가족들을 평범하게그려냄으로써 정상 가족 범위 바깥을 배회하며 한 없이 힘들고 우울한 삶을 살 것 같은 소수자 삶의 정형에 의문을 던진다. ‘진짜엄마와 아빠가 누구냐는 질문에 진짜든 가짜든 그런 것은 상관없다고, ‘정상적이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반문하는 그녀의 조그마한 입술은 발랄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제대로 꼬집어주는 이유 있는유쾌함을 담고 있다.

 

 

 

평범한 나의 삶

 소위 정상의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삶. 그들의 삶에는 당신들은 정상이 아니라는 사회규범 안에서 겪는 멜랑콜리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없이 우울하고 어두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멜랑콜리는 이유 있는밝음을 만들어 낸다. 조수양씨는 끊임없이 불가능을 말하는 사회 속에서 독립을 이루어 내고, 마리는 이성애중심의 가족주의나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의 구분에 휘둘리는 것 없이 자신의 가족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간다. 각자의 삶에서 경험한 멜랑콜리를 통해 그들은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스스로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두 영화가 대부분의 소수자에 대한 영화가 그러하듯 그들이 삶에 펼쳐진 역경만을 이야기 했다면 평범한 (멜랑콜리) 인권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영화는 그것을 넘어 소수자로 살아가는 삶 또한 충분히 살아갈만함을 이야기한다. 조수양씨는 말한다, 안달하던 때가 있었다고.

  그 때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나는 이미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장애인의 이야기를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전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소수자이기에 겪어야 했던 멜랑콜리를 자신 안에 소화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끌어내는 유쾌하고도 지극히 평범한 삶. 이를 통해 두 영화는 나에게 멜랑콜리를 사랑하고 그것으로 유쾌한 '일상'을 살아가라 속삭이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