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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며 싸운다, 나와 너를 사랑하기 위하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21. 08:01

 

 

춤추며 싸운다, 나와 너를 사랑하기 위하여

- 페미니스트를 주목하라!(Attention Féministes!)(로젠 포탱, 2011)

 

피움뷰어 임금별

 

 

(사진 출처 : jesuisfeministe.com)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사랑. 아름다움. 이는 우리 삶을 더 빛나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이다.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해주면, 세상은 분명 더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참 아름다워지기는, 아니, 나와 너를 아름다운 존재라고 여기기는 참 어렵다. 아름답다 느끼기 어려워지니, 사랑하기도 어려워진다. ?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우리가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

 

 퀘벡에 살고 있는 쥬브비에브, 바바라, 파스칼, 코코, 마르코. 페미니스트를 주목하라!(Attention Féministes!)는 이 다섯의 페미니스트들의 자화상이자, 페미니즘이 겪는 일들의 진술서이기도 하다. 그들은 책이나 강연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과 일상에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직접 거리로 나와 외치거나 행진하기도 하고, 어린 학생들과 함께 주체적인 잡지를 만들기도 하고, 직접 가정에서 구현하기도 하고, 예술로 성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불편했었고, 지금도 어색하다. 페미니즘(Feminism)Female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존경했던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은 페미니즘을 이렇게 설명하셨다. Female. Fe-(-아니다) + Male. 여기서의 Male을 남성으로 보지 말고, 강자, 주된 자, 당연하다고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보라고. 그럼 페미니즘은 강자가 아닌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 된다. 페미니즘은 노동운동이나 소수자운동 등이 나올 때 떨어지지 않고 등장한다. 정말 제대로 된 정의라고 생각한다. 강자가 아닌 이들을 생각하는 것. 한명 한명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얼마나 당연한 것인가. 그러나 이상하게도 지금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꼴펨으로 연결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불편하게 느꼈고, 또 나는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렇게도 부끄러웠던 것이다. 이 영화 속의 페미니스트들이 살고 있는 현실도 내가 마주했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섯의 삶에 페미니즘은 이제 너무도 뚜렷하게 삶에 새겨져있지만, 내가 나를 페미니스트이기 거부하게 만들었던 이유들을, 이 다섯은 조금도 비껴나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도 공격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성비하적인 농담이 오가는 가벼운 자리에서 이를 바로잡음으로서 답답이가 될 것인가 그냥 같이 웃을 것인가, 암만 봐도 뚱뚱한 나는 안 예쁜데, 내 몸이 싫고 마르고 싶다, 등등. 그러나 그들은 이 질문들 자체를 거부하거나, 또는 오랜 과정을 통해 좋은 답을 찾아내거나, 또는 답은 나지 않을 테지만 고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스트인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었다.

 

 이 영화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꼴펨과 연결지어버렸던 나와 같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든다. 특히 이 중 한명의 연인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떠나서, 잘못된 것이 있으니 고쳐나가는 것으로 연인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장면에서, , 하고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페미니즘이고 꼴펨이고,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잘못된 것은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는가, 아닌가였던 것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스트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그들의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은 재기발랄하다. 행진하는 그들은 춤추고 웃고 노래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잡지를 꼴라쥬 하듯, 때로는 규격화된 도시 계획을 비웃는 그래피티 같은 알록달록하고 유쾌한 영상은 그들의 명랑한 삶을 느끼게 해준다. 이들의 페미니즘은 결국 를 사랑하는 일이다. 미디어와 가부장적 분위기는 여성이나 남성을 특정하게 규격화한다. 그리고 우리는 비교한다. 규격에 맞지 않는 나를 미워하면서. 그러나 그들은 나를 규격 하는 것들을 거부하고, 규격화 된 내가 아닌, 지금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려 한다. 그리고 이게 발전하여 역시 규격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자 노력하는 데에 이르게 된다. 사랑은 아름답다. 그리고 즐겁다. 그래서 그들의 페미니즘은, 투쟁은, 아름답다. 그리고 즐겁다. 사랑하고자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를 포한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온전히 사랑하기란 과거나 지금이나 너무 어렵다. 나는 어릴 때 가슴이 자라고 생리 하는 것이 너무 끔찍했다. 지금도 하루에도 수십 번 모델이나 거리의 마른 사람들의 몸과 내 몸을 비교하며, 살찌는 것에 대한 엄청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다섯을 보며 너무 부끄러우면서도, 부러웠다. 영화 시작에 쥬느비에브는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유연한 시각을 갖는 것이라 말한다. 이상적인 자신과 관계에 대한 보다 더 유연한 시각, 이것이 우리 각자를, 서로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