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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꽃이 FIWOM(피움)을 만나 희망의 열매를 맺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21. 00:27

전설의 꽃이 FIWOM(피움)을 만나 희망의 열매를 맺다.

 

첫 상영작 <전설의 여공 : 시다에서 언니되다>

My Wonderful Career, 2011

-감독: 박지선

-상영시간: 75

 

 

 

6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그 대단원의 막을 연 첫 상영작은 박지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전설의 여공: 시다에서 언니 되다>이다. 단편 다큐로서 그 역량은 인정받은 젊은 여감독의 시선이 이번에는 부산 아지매의 구수한 입담으로 옮겨갔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수출산업의 성장 역군인 여공들이 이제 아지매가 됐다. 방직공장, 신발공장 그리고 고무공장에서 시끄러운 재봉틀 소리와 컨베이어벨트 소리 속에서 가족과 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그녀들을 기억하는 영화다. 그렇지만 무겁지 않고 유쾌하다.

 

조선방직과 국제상사 등이 있던 부산의 1970년대 방직공장 여공들은 이제 중년의 자녀들을 둔 어머니들이 됐다. 당시 한 공장에서 일하던 9명의 여공들은 힘들었던 그 시절, 그래도 함께 웃으며 놀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7남매의 맏이로서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동양방직에 들어갔던 10대 소녀는 비슷한 소녀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한다. 돈 벌어 부모님께 드리면 좋아하시는 모습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단다.

 

그러나 어디 행복한 기억 뿐 이겠는가! 신발공장에 들어가 오늘날 보조로 불리는 시다3년을 했다는 여인은 뒤늦게야 자신이 작업반장이던 남성 관리자에게 뒷돈을 주지 않아서라는 것을 깨달았단다. 우렁찬 목소리로 깔깔 웃던 여인은 그 당시에도 공부 안하면 시집 못 간다는 소리에 없음 혼자 살지 뭐!’했었다지만, 그 상처는 세월 속에 고스란히 스며있다.

 

 

<9명의 부산 아지매들은 전설이 된 그 시절을 공유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사진: 네이버영화정보>

 

이 영화는 이 상처와 아픔이 눈물로 덮인 시간을 넘어 오늘과 소통하는 매개가 된다. 시간은 이십년이 넘게 흘렀는데, 오늘날 젊은 여성들의 고민과 노동계급의 여성들이 느끼는 고통의 소리는 영화 속 아지매들의 증언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세대를 넘는 시간의 간극 속에서 고통과 치유라는 공감 접점을 만들어 내는 전설 같은 그녀들이 오늘날 우리의 편안한 삶을 만들어 냈다.

 

오야, 오간지, 마후라, 와바리. 공장 안의 그들만의 은어는 그들의 세계의 특수성을 대변한다. 조폭들의 언어마냥 어둡고 폭력적임을 보여주는 그 은어들은 공장의 열악한 환경과 노동자 처우를 상징한다. 비인격적인 관리자의 행동들에도 한마디 소리를 내지 못하던 그녀들은 야학의 바람을 타고 사회를 보기 시작한다. 단순히 대학생 오빠를 본다는 기대감으로 나갔던 야학에서 그들은 전태일 평전을 읽었고, 노동법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권위적인 남성 관리자에게 계속 혼이 나 자존감이 떨어져 언제나 위축된 상태였었음을 고백하는 어느 여공의 담담함이 오히려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러나 그녀들은 강했고 당당했다. 노동 투쟁 중임에도 자신 있게 관리자를 대할 자신은 없었으나, 작업반장의 애인인 친구 여공에게 노동운동에 대한 사실을 철저히 숨길 수 밖에 없었으나 그녀들은 소리를 냈고, 힘을 모았다. 그리고 그녀들의 전문기능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여공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몸소 투쟁의 현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쟁취했으며, 오늘날 여성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바로 그녀들의 딸인 우리가 말이다.

 

 

<힘든 시절을 겪으며 그녀들은 전설이 되어갔다. - 사진 : 영화포스터 중에서>

 

"늙어서 힘은 없어져도, 용기는 점점 더 강해지는기라." 

 

워킹맘의 일-가정 양립의 문제는 1970년대나 지금이나 일하는 여성에게 가장 비참하고 힘든 현실이다. 전설의 여공들이 많은 눈물을 보인 건 바로 젖먹이를 데리고 공장으로 가서 일할 수밖에 없었을 때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노란 장바구니를 아기소쿠리 삼아 미싱돌리는 틈틈이 불어터진 젖을 먹일 수 밖에 없던 그 젊은 엄마의 고통의 깊이를 그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예전에 비해 근무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문제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진전도 합의도 없다. 맞벌이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육아와 살림은 여성들의 몫으로 지워버리며, 기업도 협조하지 않아 기혼여성의 직장 생활은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전반적인 긍정적인 기운은 우리를 희망으로 내달리게 만든다. 9명의 여공들과 야학에서 배운 배움을 다시 나눠주는 삶을 사는 여공, 자신의 딸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어릴 적 자신과 화해하고 있는 여공, 지금까지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들까지 모든 여공들의 밝은 웃음은 바로 우리가 지을 수 있는 표정임을 보여준다. 험한 풍파와 모진 고난 속에서 피워낸 그녀들의 삶은 늙어서 힘은 없어져도, 용기는 점점 더 강해진다.’고 하는 전설을 만들어냈다.

 

혼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괜찮다고, 힘을 내고 웃어보자고 영화는 관객에게 말한다. 시다에서 언니가 된 전설의 여공들처럼 말이다. 제6회여성인권영화제를 통해 전설의 꽃을 볼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았다. 여기 그대 마음과 만나 피워지기를 기다리는 작품들과 함께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안희주(제6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웹기자단)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정보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15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