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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전쟁] 그들, 군인도 우리의 가족이고 친구입니다.

피움 2012. 9. 22. 15:24


지금 내 옆에 애니팡을 하겠다고 후줄근한 옷에 군번줄을 목에 걸고 있는 녀석이 있다. 이제 11월이면 제대하는 내 남동생이다. 직업은 현재 군인이며, 포지션은 의무병이다. 나름 잘 풀려서 그런지 자기 선임과 6개월인가 차이가 나서 군입대와 자대 배치 이후 승승장구해 남들보다 1달 정도 더 빨리 진급하고 병장까지 되고 지금은 분대장까지 하고 있단다. 동생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입대날에도 그냥 '어, 잘가~'로 인사를 대신했고, 아직까지도 정확히 동생녀석의 부대가 어디인지 모른다.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하면서 신경을 꺼버린 것이다. 


애니팡 하트가 다 떨어져서 영화 좀 보여달라고 징징되는 내 동생녀석은 우리나라의 성인 남성이라면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군대에 들어가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만큼 꽁꽁 뭉쳐있고 무언가를 숨기려하고 자체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그것이 폭력이라고 하더라도- 집단은 찾기 힘들 것 같다. 며칠 전 더 일찍 휴가를 나왔어야 하는 동생녀석의 부대에 이 녀석과 같은 기수의 장병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고, 내 동생의 휴가는 어제부터로 미루어졌다. 그런데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동생의 반응이 너무 무덤덤하다. 우리나라 군대에서 의문사로 사망한 군인이 적지 않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서, 자살률이 증가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동생이 막 논산 훈련소에 훈련병으로 있을 때에도 자살사건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되면서 대한민국 군대는 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조치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분노하게 되었다. 동생의 무덤덤함은 어쩌면 굉장히 아무렇지도 않게 군대 내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반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내 동생과 얽힌 아주 짧은 이야기를 보면 왜인지 모르게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동생은 군대에 있는 군인인데 그 동생에게는 제대로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막상 군대 전체의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하고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는 나의 모습에서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작은 개인사와 가족사가 결국 사회적 이슈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말이다. 우리가 사회에 속해있고, 동생이 군대에 있는 이상 군대 내 문제도 결국 내 문제일텐데 군대의 세상과 나의 세상을 분리해놓고 그냥 사건에 대해 인지만 할 뿐, 그 안의 문제를 개선시키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 '또 다른 전쟁'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요한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고질적인 문제를 고칠 수 있도록 압박할 수 있는 건강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내 동생의 군대 내 생활과 내년부터 2년간격으로 줄줄이 군대에 갈 사촌동생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자부심있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전쟁'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로,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 르포다큐다. 전세계의 분쟁 지역에 미국과 얽히지 않은 곳이 얼마나 될까? 미국은 실상 군사무기를 팔아 정말 많은 이익을 남기는 만큼, 국방부의 권한이 어마어마하다고 할 정도로 큰 나라다. 국방부 즉, 군대의 힘이 강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식 무기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군인이다. 미국은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로, 미국의 젊은이들은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이라크전에 참전하는 군인들에게는 교육을 시켜주기로 하는 등의 혜택, 그러나 이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를 위해 그리고 정말 자신의 나라에 자부심이 넘쳐 자신의 책무성을 다하기 위해 군대에 지원한다. 그것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여성이기에 더욱 자부심있게 군 생활을 하고 나라를 수호한다는 것에 더 많은 긍정적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을거라 예상된다. 수는 적지만 성실하고 퀄리티 높은 기술을 가진 여성군인은 정말 특별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인재였다. 그런데, 이런 인재들을 단순히 자신들의 권력을 자신들이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강간하는 일이 너무나도 쉽게 벌어지고 있다.


미군 내 여군 중 20%이상이 실제로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심한 보복으로 제대로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10년전에도 20만 이상이 성폭력으로 신고했다.(현재는 2배 이상 많아졌고, 이 안에도 대부분이 신고하지 못했다.) 성폭력으로 인해 여성들은은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게 되며 이 증상은 전쟁터에 다녀온 남성 군인의 외상후 스트레스와 비교했을 때 더욱 심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여성 군인들은 성폭력을 당한 이후에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고, 각종 성병에 임신의 위험에까지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에 성폭력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생존자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성폭력 문제로 신고가 되면, 물론 나름 수사하는 곳에서 이 사건들을 조사하기는 한다. 그런데 이 조사는 대부분 마녀사냥으로 끝나고는 한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에게 남자친구는 있는지, 성폭력을 당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는 대체 왜 물어보는 것일까? 심지어 이런 수사에는 남자만이 조사에 참여한다. 여성이 참여하면 너무 동정적이라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나? 성폭력 피해자가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군대 내 성폭력문제는 단순히 성욕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게이섹슈얼이 아니면서도 남성에게 성폭력을 가하는데, 동성애와 무관하다는 것에서 더욱 문제가 많다. (미국 군대의 경우, 군대 옆에 바로 성매매업소를 세우게 된다고 한다.)


미국의 해군 중 가장 명문인 마린배럭의 경우 여성군인 대부분이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경험하고 이 중 피해자가 조사나 처벌받는 것이 4/5라고 한다. 그리고 가해자는 처벌받은 경우가 단 한건도 없고 말이다. 피해자는 따로 있는데, 가해자가 유부남이어서 간통죄로 고소당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일개 지휘관이 판사고 배심원이고 검사가 되어 좌지우지가 가능한 것이 미국내 군대 지휘체계다. 정말 말도 안되는 시스템이다. 군대 내 소량의 약물을 갖고 오는 것만으로도 2-3년 형을 선고 받는데, 강간으로 인한 가해자 처벌은 단 2주간의 봉사활동으로 끝이 난다고 한다. 미국내 군대에서 성폭력으로 신고한 3223건의 사건 중 가해자가 이렇듯 봉사활동이나마 잠시 처벌을 받는 경우는 175건에 불가했다.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자신들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 자신이 믿고 있던 전우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은 친족에게 의해 성폭력을 당한 것과 유사하다고 말이다.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일이 다른 이들에게 똑같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이 계속해서 기각되고 무시당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성범죄자의 경우 평균 300명을 성폭행한다고 한다. 이 말은 곧 군대 내 성폭행범이 사회로 다시 나왔을 때 이웃들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미국의 경우 입대 전부터 15% 이상의 신병들이 성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다.-미국은 일단 입대하면 과거는 묻지 않는다.-전우애를 느껴서 지원했다고 하는 여성 군인들을 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성폭행 시 30% 이상이 상관관계로 묶여 있고 25% 이상이 담당 수사관 본인이 성폭행 가해자인 상태에서 말이다. 


물론 미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더욱 더 남성성을 강조하는 군대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남성성이 터무니 없이 저질이라는 것에서 문제가 있다. 남성성이 있다는 것은 곧 성욕이 많다는 것으로 풀이되는데(뭐, 이것은 그냥 넘어가주더라도) 왜 이것이 어느 정도나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여기는가까지 가야하는지 말이다. 이미 부대 옆에 성매매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군대에는 아직도 많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다. 앞에서도 말했듯, 이것은 성욕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잘못된 군대 내 왜곡된 남성문화로 성폭력 근절이 곧 군대 내 다루고 있는 남성성을 부정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군대 조직 원리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라 문제가 생길 것이고 말이다. 그것이 옳은 길임에도 말이다.


우리나라 군대 역시 미국 군대만큼이나 폐쇄적이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게 되듯, 폐쇄적인 문화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왜곡된다. 군인들 역시 우리의 이웃이다. 내 동생이고, 친구고, 아들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일 수 있다.(또는 여성 형제일 수도 있다.) 군대 체계는 쉽게 그 안에서만 해결되기 힘들다. 결국 밖으로부터의 변화로 군대 내 변화를 유도할 수 밖에 없다.  군대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면 군대는 쉬쉬하며 숨기려고 하지 그것을 개선시킬 시도는 거의 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사회는 그것을 묵인한다.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가 다르다고 인식되고 있고, 그렇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군대 내 문제는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으로 인해 좌절하고 평생 약을 먹고 힘겨워하는 것은 우리와 다른 인간이 아니다. 한 사람의 절망은 곧 우리 모두의 절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 군인은 우리의 가족이고 친구다. 그리고 그것은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관심을 갖고 연대하고 깨달아야 한다. 



옆에서 동생이 애니팡 하트는 어떻게 하면 빨리 채워지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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