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팻 바디]진짜 나를 대면하라!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22. 00:53


그랜드 캐넌이 멋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랜드 캐넌처럼 거대하고 존재감이 어마어마하게 큰 자연경관이 우리에게 경탄을 자아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문제에도 있듯이 바로 숨길 수 없는 그 빅~ 사이즈! 그 거대한 존재감이 있기에 그랜드 캐넌은 세계인이 사랑하는 자연경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집 마마님께서 내게 말하시길, "살 좀 빼. 왜이렇게 살이 쪘어?"라고 하신다. 그런데, 나는 딱히 살이 찐 것 같지도 않고 살을 뺄 생각도 없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 자신이 딱히 쑥쓰럽거나 하지도 않는데 무조건 살을 빼라고 하신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애들이 너무할 정도로 마른거지 나는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하라니, 이건 대체 왠 소리인지! 영화에 나오는 키나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다이어트는 다이=죽다 인 것이다!!!


우리는 뚱뚱한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살이 찌든 말든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고 건강을 헤치지 않는다면 누가 뭐라고 터치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은 뚱뚱하다는 것을 곧 역겹다고 인식한다. 뚱뚱한 것이 혐오스럽다는 가치와 같은 뜻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할머니만 해도 종종 텔레비전에 살이 찐 여자들이 나오면 무언가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마치 우리에 갖힌 짐승을 보는 양 다른 생물체를 대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 몸에 대해 평가하시고는 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나와 같은 사람이 걸어가는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평소에도 내 가치관과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의 가치관이 충돌할 때가 많은데, 유독 소위 뚱뚱한  사람들에 대해서 서로가 이해를 못할 때가 많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건 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거잖아. 그냥 내가 좋으면 되지! 왜 꼭 누군가가 원하는대로 살아야해?'라고 묻고, 사람들은 이 질문을 던지지도 않은채 무조건 '뚱뚱한 것은 죄악'이라는 식으로 현대식 진리를 내재화시키고 살아간다. 다른 말로 살이 찐 사람들이 죄를 진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팻 바디'는 이런 사람들을 무척 통쾌하게 비판한다. 자신감있는 뚱뚱함이 얼마나 정치적인지에 대해 말하면서 몸 하나만 보더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온갖 정치적인 가치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어떠한 '판단의 대상'으로만 '몸'으로만 보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뚱뚱한 사람을 비만이라고 말한다. 비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은 엄청나다. '게으르다, 더럽다, 혐오스럽다, 역겹다' 등등. 우리는 그들과 제대로 이야기 해보지도 않고 그들의 몸만을 보며 그들의 가치를 판단한다.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소위 주류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의하는 권력에 의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압박감을 느끼고 살아간다. 그것은 비만인 이들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비만이 아닌 사람들도 이러한 압박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텔레비전에서 초 늘씬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거울을 보고 우리의 몸과 그들의 몸을 비교해 본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뚱뚱해. 그리고는 자신감은 저 밑으로 하락하락하락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제시카와 키나는 말한다. 비만편견철폐운동의 이유이자, 그들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를 말이다. 그들은 '몸'을 말하지 않는다. '그 자신'을 말한다. 사회가 우리를 인정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편하라고 나를 학대해가며 바꾸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그것도 내가 다른 이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들은 말한다. 우리의 모든 몸이 다 훌륭하다고 말이다.

그들은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사랑하고 있다.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수없이 많은 정치적인 가치들 속에 우리는 나 자신을 보듬고 사랑하기 보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규범에 갖혀 그들이 원하는 것에 나를 맞추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그 스스로를 사랑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가 온전히 사랑받길 바란다. 어떠한 조건이 아닌,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받길 원한다. 그것은 몸에게도 마찬가지다. 뚱뚱하든 뚱뚱하지 않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그 본연의 자신을 둘러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또 누군가를 조건없이 사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주류란 무엇일까? 주류는 누가 만들어내고 판단되는 것일까?

사람을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따는 것은 그 사람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팻 바디'는 누가 우리의 삶의 주인공인가를 묻는다. 내가 행복해 지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에 대해 말한다. 우리의 삶의 주체는 결국 나 자신이다. 그 중심을 잃지 않고 당당해 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정치적이며, 행복으로 가는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삶의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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