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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궤도 경쟁: [경쟁부문 리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21. 21:39

2012.09.21. 8회차 영화

 

 


 

푸른, 물고기

졸업사진

그의 이름은 도시

Blue, 2012

Graduation photo, 2011

His name is CITY, 2011

한국, 드라마, 22

한국, 드라마, 18

한국, 다큐멘터리, 17

감독 지수연

감독 김주용

감독 프로젝트 비디엘 (이미사, 연경, 언저리)

소녀A

구토

할망바다

Girl A, 2011

Vomiting, 2011

Grandma Ocean, 2012

한국, 드라마, 12

 

한국, 드라마, 20

 

한국, 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5

감독 이상수

감독 임경희

감독 강희진, 한아렴

 

 


 

 경쟁. 소위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쟁이라는 단어는 매일 마시는 물과 같이 친숙하다. 하지만 물도 많이 마시면 체한다고 했다. 언제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경쟁 상황은 왠지 모를 피곤함과 거부감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제라면 으레 있기 마련인 경쟁 부문의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편히 영화를 감상한다는 느낌보다는 영화를 관찰하고 판단하는 채점관이 된 느낌이다. 갑의 입장에서 을의 창작물들을 심사하는 것만 같은 느낌은 가히 즐겁지만은 않다. 이런 어딘지 모를 찜찜한 기분은 아마 경쟁이 담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 때문일 것이다. 보통 경쟁을 한다고 하면 일등, 이등, 삼등과 같이 수직적으로 줄을 세우기 위한 경쟁으로 읽혀지기 때문에.

 그러나 누군가의 인권이 더 심오하고 누군가의 작품이 어떤 사항을 더 잘 그려냈다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긴 한 일일까. 이번만큼은 예외를 두기로 한다. 다른 영화제도 아니고 여성인권영화제이기에 어떤 작품이 더 나은가 수직적으로 줄을 세우고 별점을 메기려는 갑의 심보를 버려보기로 하였다. 덕분에 여성인권영화제에 경쟁 부문이 존재하는 나만이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경쟁 부문에 나온 6편의 작품들은 각자의 사연이 각자의 작품에 담겨 모두가 다양한 색깔을 내며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들 작품들은 수직적 경쟁을 하며 무엇이 더 중요하다,’ ‘무엇이 더 잘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그저 조용히 다양한 여성 인권 관련 이슈들을 수평적 경쟁을 하며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아래는 6편의 작품 중 두 작품에 대한 이야기이다.

 

 

 

 

 “푸른, 물고기의 주인공 김연수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이다. 영화는 그녀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강간을 당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쫓아간다. 그 과정에서 남성의 강간을 돕는 것은 같은 반 친구들이다. 왜 같은 여성이면서 그녀를 강간하고 비디오를 찍는 것일까? 영화는 요즘 들어 부쩍 이슈화 되고 있는 성폭력 사건의 핵심을 꼬집는다. 보통의 매체가 다루듯 남성의 성욕이 성폭력의 핵심이라면 이 영화에서 같은 반 친구들은 등장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같은 반 친구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폭력의 핵심에는 권력이 있음을. 교실 속에 존재하는 권력, 더 나아가 학교, 사회에 존재하는 권력에 가장 무참한 형식으로 휘청 이던 그녀의 삶은 그녀가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로 생존을 연습하기도 하고 죽음을 선택하기도 했던 매체인 로 귀결된다. 물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었던 푸른물고기, 이 사회의 수많은 연수들을 기억하며. 

 

 “그의 이름은 도시는 다큐멘터리이지만 6편의 단편 중 가장 추상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영화 속 화자는 완전한 나의 집을 꿈꾼다. 서울의 땅은 수많은 집들로 비좁은 불빛들을 내비추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화자가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추상성은 수많은 건물들이 존재하지만 정작 실제로 내가 존재할 곳은 없는 도시를 담으려는 필연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가 상영된 서울이라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두 명의 여성래퍼 프로젝트 랩 그룹 폴 어쿠스틱5개구 투어를 따라가며 주거의 문제를 고민하는 화자의 흔들리는 시선은 그녀만의 것이 아님을 눈치 챌 것이다.

 

 

  글의 마지막은 폴 어쿠스틱의 '그의 이름은 도시'라는 곡의 가사 일부로 마치고 싶다. 성폭력, 취직문제, 주거문제, 원조교제, 동성애, 해녀 할머니의 삶. 이 모든 삶은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계속,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들의 곁에서 어떤 삶이 더 낫다는 우열없이 끊임없이 수평궤도를 그리며 존재하고 있다. 

 

군중 속에서 외로웠다는

한 마디 대사만은 이해가 돼

알 수 없는 답답한 맘은 배가 돼

뿌리 깊은 낙오와 빈곤을 숨기고 있는

그 뒤의 어둠을 캐물어 밝히고 찢는

그런 짓은 할 수 없어, 이유는 끝내 묻지 못해

익숙한 불편함에 더는 잘 웃지 못해

집에 돌아가고 싶어

그치? 우리 집, 한데 집은 어딨지?

-그의 이름은 도시 (폴 어쿠스틱 EP [Affection, please], 2009)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웹기자단_ 김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