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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이란 이름의 폭력 - 「파이어Fire」(브리기테 마리아 베르텔레)

피움 2012. 9. 23. 10:46

증명이란 이름의 폭력 - 「파이어Fire」(브리기테 마리아 베르텔레, 2011)

 

 

 

(출처 : filmfest-oldenburg.de)

 

영화가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그리고 그 고통이 전해져 너무 오래 남아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리뷰를 써야할지 모르겠다. 픽션이지만 픽션 같지 않아서, 가까이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어왔던 일이기에, 이것을 어떻게 글로 풀어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평범한, 그러나 꽤 행복해 보이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유디트는 어느날 성폭력을 당하게 된다. 성폭력의 고통에서 유디트는 헤어 나오지 못한다. 직장, 사교활동, 연인과의 관계, 안정감, 등등 그녀의 행복한 나날들을 구성하던 그 모든 것들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녀가 피해자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공식적인것을 판단하는 이들은 사실로 공식적인사실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사실인가를 위해 유디트에게 협조를 요구한다. 사실이 사실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이틀 전에 성폭행을 당하고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나 여전히 아픈 이에게 그건 증명의 요구라기보다는, 증명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이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괴로웠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동안 손이 떨릴 정도였다. 성적 신체적 폭력이 화면에 잡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를 괴롭게 만든 건, 여전히 아픈 유디트에게 쏟아진 것들, 그리고 거부당한 사실을 사실로서 만들기 위한 그녀의 처절한 노력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그 고통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그저 유디트가 겪은 모든 것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성폭력의 이후 유디트의 인간관계들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유디트는 어떤 불안 속에서 지내야 하는지, 그러나 가해자는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지, 유디트가 사실을 공식적인사실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해야만 했는지, 이 영화는 그걸 다 여과 없이 보여준다. 고통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영화 안에서 그녀의 감정이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 때문에 변하는지 모두 보게 된다.

 

사실은 어쨌거나 사실이다. 또한 누군가가 어떤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다 할 때에는 더 높은 위치에 있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 지금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대체 사실에 공식적이다, 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피해자다 가해자다 인정하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다른 범죄들보다 특히,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은 왜 자신이 피해자임을 그토록 처절하게 증명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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