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23℃] 외로운 할머니의 너무나도 추운 겨울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7. 13:44

 

외로운 할머니의 너무나도 추운 겨울

 영화 <23℃>-

 


할머니에게 찾아오는 건 119와 복지사의 전화 한 통뿐

 

할머니는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추워죽겠다고 119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고 출동하는 고참 직원은 또 보일러 이야기겠지, 익숙한 일처럼 할머니를 찾아간다. 할머니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종이를 태우고 있었는데 그 중에 가스요금 체납 고지서가 있었다. 직원이 “할머니, 돈을 안 내셔서 가스가 끊긴 거예요”라고 말해도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하신다. 그날 하루만 두 번 할머니의 집을 찾아준 직원들에게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지만 직원들은 업무시간이라고 돌아간다.

사실 그날은 할머니의 생일이었다. 해가 진 저녁, 할머니 집에 한 통에 전화가 걸려온다. 할머니는 아들이 찾아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복지사는 잘 됐다며, 할머니를 위한 노래를 불러준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데 할머니의 생일엔 지독한 추위만 있었다.


밥 먹자, 밥 먹어야지

 

119 직원들이 돌아가고 난 저녁, 할머니는 세 사람분의 밥그릇이 올라온 밥상 앞에서 혼자 식사를 한다. 밥을 먹고 나서 성냥을 하나 켠다.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린 시절의 아들은 밥 먹자는 말에 풍선을 사달라며 울기만 한다. 다 자란 아들은 밥 먹으란 말에 바쁘다고 혼자 먹으라고 한다.

밥 먹었냐는 말이 안부인사인 한국이다. 할머니는 밥도 못 먹고 다닐까봐 걱정돼서 밥을 먹자고 하는데 다들 바쁘다고만 한다. 어린 아들도, 큰 아들도, 아들 같은 직원들도 할머니가 차려준 밥을 함께 먹지 않았다. 할머니는 안부를 챙겨주고 싶은데 누구도 챙김받지 않는다.
 

성냥팔이 소녀의 환상

 

할머니는 환상 속이 아닌 현실 속에서 울음소리를 듣고 집을 나선다. 아들에게 주려고 아껴둔 것을 쥐고서 이리오라고 하는데 나타난 건 작은 고양이. 낙담한 할머니는 희뿌연 연기와 나부끼는 천들을 지나 집으로 돌아간다. 도착하니 보이는 건 보일러를 고치고 있는 119 직원들, 방문을 열면 보이는 건 풍선을 들고 좋아하는 아이, 고개를 돌리면 부엌에 서 있는 누군가. 할머니는 모든 것들을 지나쳐 방에 들어가 눕는다. 다음 날 아침, 숨을 거둔 할머니의 이부자리 옆에는 타고 난 시커먼 성냥들이 쌓여있었다.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을 그어 맛있는 음식과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를 봤는데 할머니는 성냥을 그어 풍선을 가지고 노는 아들을 봤다. 할머니는 상상 속에서 조차 밥도 안 먹고 풍선을 사달라는 어린 아들을 달래주는 엄마였다.

 

해결책은 다른 무엇도 아닌 관심

 

영화가 끝나고 있었던 감독과의 대화에서 탁세웅 감독은 관심이 중요하다고 했다. 감독이 말한 따뜻한 관심은 세금을 못내도 난방이 끊기지 않는 환경이 아니라 성냥을 통해 환상을 보는 비극이 잃어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밥상 앞에 모여 앉아 밥 한 끼 같이 먹어준다면, 생일이라고 얼굴 한 번 비춰준다면, 할머니는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