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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공포심에 사로잡힌 소중한 여자들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7. 14:18

 

공포심에 사로잡힌 소중한 여자들

 다큐멘터리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

 

 

흩어진 친척들이 한 집으로 모이고 넓은 고속도로를 꽉꽉 메우는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지나갔다. 연휴동안 조용한 동네가 소란스러워지며 집집마다 각종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그야말로 평화롭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즐거운 명절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습관처럼 스마트폰에 포털 사이트를 열고 뉴스 헤드라인을 천천히 보기 시작했다. ‘추석 연휴 늘어나는 가정폭력 112신고’, 쓸쓸한 헤드라인이 연예뉴스에 밀려 작은 화면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것은 비단 명절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가정폭력’이라고 입력하면 수천 개의 뉴스와 사례가 검색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는 2009년 기준 368만 명이며 생명에 위협을 받는 여성은 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량식품 유통, 성폭력, 학교 폭력 그리고 가정 폭력을 가장 우선적으로 근절해야 하는 4대 사회악으로 꼽았다. 이렇게 가정폭력은 현대 사회에서 소득, 환경, 계층 구별 없이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흔한 범죄가 되어버렸으며, 우리나라의 가정폭력 발생률은 OECD국가 중 1위로 꼽힌다. 인간에게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이며, 안식처가 되어야 할 가정이 폭력이 가장 쉽게 일어나는 무서운 곳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2011년, 가정폭력으로 106명 사망’이란 헤드라인이 걸려있다

 

가정폭력의 현실에 대하여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들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공동체 참여까지 이끌어내는 신시아 힐 감독의 네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Private violence>는 이러한 가정폭력의 현실을 정통으로 직시하고 있다. 가정폭력의 생존자이자 가정폭력 법 집행관을 훈련하는 가정폭력 전문 변호인인 주인공 ‘킷 그루엘’의 시선을 따라 영화는 진행된다.

 

영화 초반,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쳐와 쉼터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아직도 폭력적인 배우자와 그의 주변인들로부터 자신의 은신처를 들킬까봐 늘 불안에 떨며 살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쉼터에 거주하는 한 여성의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아내를 찾으러 쉼터까지 쫓아오다 경찰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쉼터에 있던 모든 여성들이 안도의 환호와 울음을 터트린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두려움과 공포심의 해방감이 서러운 울음으로 터져 나오는 것일 것이다. 나는 이 여성들의 울음을 마주하자 그때서야 통계수치, 숫자로 보던 가정폭력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피해 여성이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

 

이처럼 폭력을 당하던 여성들이 받는 두려움과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며, ‘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들에게 가정은 무섭고 두려운 곳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 중 상당수가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도망치지도 못하고 있다. 피해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배우자에 대한 공포심이 이미 절대적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정서적 폭력을 동반한 신체적 폭력을 당해왔으므로 피해 여성들의 자존감은 매우 하락하고 자신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며, 도망쳐도 자신을 찾아낼 배우자의 영향력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 이미 그들은 고통과 폭력 속에 잠식되어 있었다.

 

또한 피해 여성들이 가정폭력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자녀’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도망가게 되면 자신에게 향했던 배우자의 폭력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옮겨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으며, 홀로 남은 자녀에 대한 걱정으로 폭력으로 물든 가정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자녀는 여성들이 공포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영화 속에서 변호인 ‘킷’의 의뢰인인 ‘디에나’ 역시, 딸인 ‘마티나’를 위해 남편의 폭력을 적극적인 저항없이 당하고만 있었다. 남편은 자녀 ‘마티나’ 앞에서도 폭력을 서슴지 않았으며, 오히려 ‘마티나’를 이용하여 ‘디에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주인공 디에나


이웃의 도움으로 남편에게서 ‘디에나’는 구출되었지만, 남편의 기소는 복잡한 법적 절차로 인해 쉽지 않다. 영화처럼 미국에서 폭력을 행사한 배우자에 대한 기소는 매우 복잡하여 기소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한국의 가정폭력은 4대악으로 선정됨으로서 더욱 그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여전히 신고하지도 못하며 일명 ‘매맞는 아내 증후군’으로 묵묵히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이 많다.

 

또한 가정폭력은 ‘자녀 대물림’ 현상으로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는 범죄이며 지속적인 신체적 및 정서적 폭력은 피해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기도 한다. 실제로 폭력을 당하던 여성들이 가해자인 남편을 살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생명의 위협을 당했더라도 정당방위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 한순간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상황이다. 물론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매우 나쁜 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동안 여성과 자녀가 당하던 신체적 폭력과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은 여성이 가해자의 옷을 입음으로서 한순간에 무시되어 버린다. 영화 속 변호인인 ‘킷’은 그런 여성들을 구출할 수 있게 도와주며, 구출 이후에도 제 2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영화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피해여성들을 구출할 수 있는 것은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다. 아직도 기나긴 지옥 속에 살고 있는 여자들이 있다. 누구에게 소리치고 싶지만, 그래서 소리쳐도 보지만 어두운 손바닥은 그들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아직도 그들은 어두운 그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미 지속된 폭력에 노출되어 공포에 사로잡혀 용기를 낼 수 없는 피해 여성들을 위해 우리는 먼저 그들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어야 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도 행복하고 안락한 가정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한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