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피움뷰어] 만들어지는 여성, 거부하는 여성

한국여성의전화 2019. 10. 4. 01:11

만들어지는 여성, 거부하는 여성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미니 미스>, <빼라는 놈을 패라> -

한국여성의전화 9기 기자단 오늘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말을 기억하는가. 사회는 여자라만 무릇 이러해야 한다라는 기준을 정해두고, 그 틀에 맞추어 여자를 길러낸다. 여기,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힘을 가진 보부아르의 이 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기시키는 두 영화가 있다. 어떻게 사회가 여자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미니 미스>, 여자를 만들어내는 사회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빼라는 놈을 패라>.

<미니 미스>는 미스 브라질 선발대회에 출전한 후보들의 인터뷰 장면을 비추며 시작한다. 우승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후보들은 다름 아닌 3살에서 5살 남짓의 여자아이들이다. 저마다 가지각색의 드레스를 차려입고, 머리 장식을 하고, 속눈썹은 길게 빼고 입술은 붉게 칠한 아이들은 조신하게앉아 남성 심사위원으로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받는다. 바비 인형을 좋아한다는 미스 브라질 월드 베이비후보에게 한 심사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바비 인형을 닮았구나!" 그러자 아이는 말한다. "바비는 조용해요. 난 조용하지 않은데."

영화 <미니 미스> 스틸 컷

아이들은 미인 대회를 통해 여자로 만들어진다. 자신의 욕망을 죽이고 인형처럼 조용히 예쁘기만 하는 법을 익힌다. 여자라면 무릇 꾸밈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가꾸어 자신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그 꾸밈이란 입술에는 보라색이 아니라 빨간색을 바르는 거라는 것을, 말썽부리지 않고 순종하며 유순하게 굴어야 한다는 것들을 배운다.

영화 <미니 미스> 스틸 컷

그렇게 미니 미스로 뽑힌 아이는 과연 행복할 것인가?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누구의 욕망인가?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한 가지 밝히자면, <미니 미스>는 결코 아이들이 여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의 재현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반면 <빼라는 놈을 패라>는 더 이상 여자로 만들어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영화는 신체 부위에 타투를 새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넓고, 비대하고, 매끈하지 않은 피부에 검은 타투선이 수 놓인다. 시술이 끝나고 완성된 타투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RIOT NOT DIET’이라는 문구와 함께 피자 한 조각의 그림. 이것은 너희가 원하는 여자로는 살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폭동 선언이다.

영화 <빼라는 놈을 패라> 스틸 컷

영화 중간중간 무미건조한 기계 음성으로 내레이션이 깔린다. 서구 사회에서는 자본을 증식하는 데에 있어 뼈와 살이 자기 최적화를 위한 원재료가 됩니다. 몸은 미래를 위한 투자 대상이며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을 완벽히 섬기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신체마저 상품이자 투자 대상으로 만든다. 특히 여성의 신체는 더욱더 그러하다. 젊고, 매끈하고, 마르고, 윤기 나는 신체에는 비싼 가격이 매겨지고 사람들은 그러한 신체를 갖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헬스, 다이어트, 성형 등 갖가지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미디어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여성 신체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지갑을 열게 한다.

그러나 <빼라는 놈을 패라>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는 보통의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신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보통 여성의 이미지에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듯 주류에서 이탈한 자신들의 신체를 과감하고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셀룰라이트가 그대로 드러난 살결, 축 처진 가슴과 뱃살, 전혀 마르지 않은 몸매가 화면에 가득 잡힌다. 그들의 표정은 한없이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영화 <빼라는 놈을 패라> 스틸 컷

이들은 여성의 신체 이미지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요구되는 행동 양식도 거부한다. 다리를 쩍 벌리고, 담배를 피우고, ‘모든 여성은 레즈비언이야!’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른다. ‘너희가 원하는 여자는 되지 않겠다는 듯이. ‘빼라는 놈을 패라라는 제목만큼이나 통쾌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과 여성의 신체 이미지에 질린 이에게 한 모금 사이다가 되어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