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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뷰어]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싸움, 그 한복판에서

한국여성의전화 2019. 10. 4. 01:32

세상을 바꾸는 작은싸움, 그 한복판에서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여성의원>-

 

지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2019년 초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는 많은 페미니스트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성 평등이라는 가치를 위해 80대인 지금까지도 소임을 다하는 미국의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의 삶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9년 하반기, 또 다른 여성 리더 '카르멘 카스티요'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여성의원>이 공개된다.

영화 <여성의원> 스틸 컷

 

어떤 것을 이루려면 싸워야 한다

카르멘은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미국 이민자이며, 동시에 여성이자 호텔 청소노동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한 정체성들의 교차지점에 서 있는 그는 자신이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속해있음을 항상 실감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카르멘의 직장인 '옴니 호텔'에서는 비백인 여성 청소노동자들에게 적은 급여로 강도 높은 일을 시켜왔다. 동네의 다른 대형 호텔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상황을 겪고 있었다. 참다못한 카르멘은 대형 사업장의 노동 착취를 폭로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하며 주변의 소수자들을 결집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강렬한 구호를 외치며 적극적으로 지역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단순히 돈을 벌 수 있는 것 이상의 변화를 일으킬 방법이야말로 정치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히스패닉 청소노동자의 정체성을 내세우며 쟁쟁한 선거 후보자들을 제치고 주의원에 당선된다.

영화 <여성의원> 스틸 컷

 

다양한 정치인의 얼굴

잠깐 정치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단어를 보았을 때, 어떤 사람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 중장년-중산층-고학력-비장애인-비성소수자-백인(한국의 경우 한국인’)-남성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인의 얼굴이란 너무나도 제한적이며, 그 제한된 얼굴들은 결국 사회적 상상력과 역량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린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카르멘과 같은 소수자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시도는 매우 유의미하다. 다양한 정체성과 삶의 맥락들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야 비로소 실효성과 생명력을 머금은 정치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즉 카르멘의 당선은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라는 보다 강력한 공적 요구의 신호탄이자, 또 다른 소수자 집단에 속한 정치인들이 등장할 수 있는 디딤돌이기도 하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성소수자 여성, 장애 여성, 빈곤층 여성, 이주 여성 등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균형 있게 대표되는 정치판이 절실하다.

영화 <여성의원> 스틸 컷

 

작은싸움이 만드는 변화

물론 청소노동자이자 주의원으로 살아가는 생활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여전히 뿌리 깊은 편견들이 카르멘의 앞을 가로막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원으로서의 활동은 그에게 여전히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싸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고작 사소한 지역 정치따위가 세상을 바꾸겠냐고 빈정댈 수도 있지만, 이것은 어떻게든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스스로가 속한 작은세상을 바꾸는 일. 그리고 실질적인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초선 기간 여러 투쟁에 참여했고, 최선을 다해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던 카르멘은 그래서 재선에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 과연 그는 재선에서 승리하여 정의를 위한 작은싸움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꼿꼿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카르멘의 이야기는 제13회 여성인권영화제(13th Film Festival For Women's Rights) <여성의원>에서 더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