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까 봐 두렵다면, '어슐러 르 귄'처럼!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어슐러 르 귄의 환상특급>-

하안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이 작가의 작품이 없었다면 해리포터도 나오지 못했을 것’, ‘휴고 상과 네뷸라 어워드에서 수상한 최초의 여성 작가’, ‘미국 의회 도서관으로부터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 상을 받은 작가’, 이것들은 모두 어슐러 르 귄에게 붙는 수식어들이다. 이 전무후무한 기록들은 그가 판타지와 SF문학계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과 문학적 성과를 가늠케 하지만, 어슐러 르 귄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슐러 르 귄의 환상특급>은 이 화려한 수식어들만이 전부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기꺼이 응답하는 자세가 그를 살아있는 전설이 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백인 과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SF 문학계에 변화를 일으키다

르 귄이 소설 발간을 시작했던 1960년대는 SF소설이 주류 문학으로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시기였다. 여기에 더해서 SF문학계 자체도 백인 과학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성차별과 인종차별 때문에 여성과 비백인작가는 자연스레 배제되었다.

하지만 외계인과 우주선 등, 과학기술에 중점을 둔 하드 SF의 고루한 설정을 걷어내고 소설적 성취에 더 중점을 둔 소프트 SF로의 새로운 물결을 가져온 것 또한 이들의 성과였다. 사회적 소수자에 속한 이들은 그들의 배경과 경험을 토대로 이전까지 SF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다양한 사회 이슈, 인문학적 성찰 등을 소설에 담아내기 시작했고, 학회를 구성해 연대하며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어슐러 르 귄은 이 중심에서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이었다.

한계를 인정하고 나아갈 때, 더 넓어지는 소설 속 세계

르 귄은 오늘날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SF작가라고 불리지만, 그의 빼어난 상상력의 작품들은 때때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받기도 했다. 대표작 <어스시 시리즈>의 주인공은 남성이고 여성인물은 부수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으며, <어둠의 왼손>한 사람의 일생에서 엄마도 아빠도 될 수 있는 양성이라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했지만 이 종족의 기본 지칭으로 남성명사를 사용하여 비판을 받았다. 페미니스트로서 갈등을 느꼈던 시기들, 그 당시에 옳다고 했던 것들이 시대가 지나 틀린 것이 되었을 때, 르 귄은 이렇게 말했다.

맞습니다, 어스시 시리즈는 페미니스트 작품으로써 완전한 실패작이죠. 제가 자란 문화권 내에서 저는 여성 마법사 정도를 떠올렸어요. 앞으로는 더 배우겠죠.”

르 귄은 이 비판들을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제로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소설 쓰기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하고, 기존의 환상적인 세게관에 좀 더 현실성을 더했으며, 특권과 계급, 불평등에 대한 묘사는 더욱 세밀해졌다. 그렇게 <어둠의 왼손>의 초판 후 40여 년이 지난 2009, 르 귄은 재판본의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시 내가 여러 가지를 놓쳤으며 이제 와서는 다르게 묘사했을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란 변화가 있은 다음을 뜻한다. 나는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변화가 일어나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쓴 것은 당시의 변화 중 일부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계속 쓰고 전진한다는 것

영화 <어슐러 르 귄의 환상특급> 스틸 컷

"어떻게 작가가 된 건지 묻는데,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라 계속 썼어요. 그게 전부예요. 저의 존재 방식이었죠."

르 귄은 SF작가로서의 자신의 일에 정통했고, 동시에 시대의 변화와, 변화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맞서왔다. 2019년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모두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에 더 확신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곤 한다. 여성인권, 불평등, 자유로울 권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우리는 명명되기 전엔 존재치 않았던 것들을 무한히 마주치며 매 순간 자신이 틀렸는지, 맞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어슐러 르 귄은 이러한 고민에 빠진 우리에게 이렇게 격려해주는 것만 같다.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변화가 일어나는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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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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