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톡톡

[피움톡톡] 엄마와 딸, 가깝고도 먼 관계 속의 연대

한국여성의전화 2019. 10. 6. 18:50

엄마와 딸, 가깝고도 먼 관계 속의 연대

-13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 <연락처> <쓰라린 바다> <프라이머리 컬러스> <그녀> <파티전 거리>-

 

재인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영화 <연락처>에는 가정폭력 생존자들이 머무르는 쉼터에 갑자기 찾아온 가해자가 등장한다. 영화 <쓰라린 바다>에는 가정폭력 가해자인 남편을 피해 낯선 곳에서 일하며 딸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고, 영화 <그녀>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엄마와 딸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담았다. 영화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한 명의 주인공이 카메라 앞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들이 강요받았던 침묵을 꺼내놓는다. 영화 <파티전 거리>는 오디션을 보러 가는 주인공이 아이가 혼자 남겨졌다는 전화를 받은 후 엄마로서의 역할과 커리어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다. 다섯 영화는 모두 가정폭력 생존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특히 엄마와 딸의 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음에도 엄마와 딸의 관계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네 영화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이에 대해 영화 상영 이후 ‘<'엄마와 딸'이라는 연대> - 폭력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과 엄마와 딸, 그 가깝고도 먼 관계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서재인 시설장이 진행을 맡고,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칼리가 패널로 참여했다.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 엄마와 딸

상영된 네 영화 모두 가정폭력이라는 상황 속에서 엄마와 딸의 연대에 대해 다룬 만큼,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엄마와 딸의 연대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피움톡톡이 시작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칼리는 빨리 가정폭력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조급했던 자신과는 다른 엄마를 보며 왜 엄마는 결단을 내리지 않지?’, ‘왜 선택을 하지 않지?’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 한 명만 노력하는 관계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에 있어 그 행동을 이끄는 것과 동시에 연대하는 관계 속에서 엄마와 딸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축한 말이었다.

 

서재인 쉼터 시설장 역시 폭력 상황을 오랫동안 견디고 참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자녀이고, 역설적으로 쉼터에 오게 만드는 것도 자녀라는 말을 듣곤 했다며 엄마와 딸이 같은 여성으로써 삶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런 경험을 기반으로 딸들이 엄마를 더 지지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연락처>에서 재현된 가해자의 폭력과 경찰의 무능함, 그리고 지금

서재인 시설장이 쉼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후 피움톡톡은 자연스럽게 쉼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첫 번째로 상영되었던 영화 <연락처>는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 생존자 쉼터에서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비공개 쉼터에 무단으로 침입했고, 경찰이 이에 방관했던 사건에 관해 서재인 시설장은 추운 겨울날 힘들게 피신하던 사람들을 보면서 굉장히 분노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후 경찰은 가정폭력 위험성 척도 등 여러 대응책이 마련했지만, 여전히 가정폭력 현장에서는 이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여전히 폭력적인 가해자와 무능한 경찰

영화에 등장한 가정폭력 가해자들과 경찰에 분노를 표하는 관객도 있었다. 피해자들이 가정폭력 피해로부터 치유를 받는 동안 폭력적인 가해자들과 무능한 경찰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지 묻는 말에 서재인 시설장은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경찰이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부족한 젠더 감수성 때문이고, 가정폭력 가해자 역시 정신적인 문제가 있기보다는 아내와 자녀를 소유물로 보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덧붙였다. 엄마와 딸의 연대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모두의 연대를 강조하는 말이었다.

 

엄마와 딸은 같은 시간을 다른 나이로 만나고, 같은 여성이지만 다른 역할로 서로를 대하는 사이이다. 그만큼 그들의 관계는 어렵고, 역설적으로 그 관계는 소중하다. 엄마와 딸의 연대를 그린 네 작품을 통해 이들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