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노하고 슬퍼하고 또 웃는다


:<웃어봐>,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여자1 여자2 여자3>, <수잔과 남자>, <루비 파샤의 전설> 피움톡톡 후기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소원


2018년 9월 15일, 압구정 CGV 아트하우스에서 제12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인 <웃어봐>,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여자1 여자2 여자3>, <수잔과 남자>, <루비 파샤의 전설>상영 후 피움톡톡이 진행됐다. 다섯 편의 영화가 모두 유쾌한 분위기인 만큼 해당 피움톡톡 역시 무려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페미니스트 스탠딩 코미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나눔과 회원 윤희근이 진행을 맡았고,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Dora희년과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의 셀럽 맷이 관객에게 웃음을 전파하기 위해 무대에 섰다. 상영작들의 통쾌한 결말과 진행자들의 능숙한 아이스브레이킹 덕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페미, 믿습니까? 믿습니다!

무대에 선 첫 번째 주자는 Dora희년이였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의 자신은 '옛사람'이고 알고 난 후에 '새사람'이 되었다는 그는 아들 타령을 하는 부모님 앞에서 리모컨을 바지에 넣고 ‘아들이다!’라고 외친 유쾌한 ‘썰’을 풀며 코미디를 시작했다. 기독교 신자 페미니스트 모임인 ‘믿는 페미’에 속해 있기도 한 그는 페미니스트 기독교 신자로서 겪는 고충을 털어놓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른 기독교 신자와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어 ‘차라리 기독교에 페미니즘을 접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상상은 그 자체로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 옷까지 갈아입으며 페미니즘을 전파하는 목사로 변신한 그의 모습은 <수잔과 남자>에서 랩 하는 수잔을 연상시켰다. 맨스플레인과 성희롱을 일삼는 남성을 랩으로 해치우는 것, 목사가 페미니즘을 설교하는 일은 현실에서 실행되기는 힘든 상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상이 많은 사람에게 공유될 때 ‘웃음’이라는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웃음은 모두에게 큰 힘이 된다. Dora희년의 공연은 그러한 상상력과 웃음의 힘을 몸소 보여준 시간이었다.


손쉽게 페미니스트가 되려는 남성에게

스탠딩 코미디 두 번째 주자는 셀럽 맷이었다. 그는 ‘고민 없이 손쉽게 페미니스트라 이야기하는 남성’을 중심으로 여러 페미니즘 이슈를 코미디로 풀어냈다.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 없이 여성을 ‘사랑’한다며, ‘딸이 있다’며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뻔뻔한’ 남성들의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출산력’을 비꼬며 정자에도 등급을 매겼으면 좋겠다는 ‘정자력’ 이야기는 현실 속 여성에게 강요되는 아들 출산의 압박을 연상시키며 속 시원하면서도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셀럽 맷은 자신이 당했던 성희롱을 이야기하며 남성들이 쉽게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대신 자신을 더 돌아봤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진짜' 남성 페미니스트가 많아지길 바란다는 얘기로 끝을 맺었다. 입담이 좋아 한마디 한마디마다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 가운데는 뼈가 확실한 코미디였다.




우리는 웃을 것이다

<웃어봐>의 주인공은 웃어보라는 남성에게 침을 뱉는다.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의 주인공은 무대를 압도하는 마임을 선보이고, <여자1 여자2 여자3>의 여성들은 관객을 향해 '이제 여러분 차례'라고 말한다. <수잔과 남자>에서 수잔은 랩으로 남자의 머리를 폭발시키고, <루비 파샤의 전설>에서 루비는 약혼자의 가족을 죽인 후 세계적인 전설이 된다. 다섯 편의 영화는 모두 속 시원한 결말을 맞으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며 짐을 나눠서 지는 것만큼이나 함께 웃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 현실을 버티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다섯 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피움톡톡이 진행되는 동안 극장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함께 웃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희망이 되었다.


피움톡톡 시간에 ‘감사하다’는 말이 두 번 나왔다. 한 번은 무대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보여준 Dora희년이 힘을 얻고 갈 수 있어 감사하다는 얘기였고, 다른 한 번은 피움톡톡이 다 끝나갈 무렵 페미니스트인 자신의 가치관이 옳다는 확신을 주어 감사하다는 관객의 이야기였다. 이렇듯 웃음은 그 웃음을 주는 사람도, 그 사람 덕에 웃는 사람도 모두 힘을 얻어갈 수 있는 일종의 마법이다. 함께 웃었던 이 시간이 피움톡톡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에게 앞으로 다른 일들을 버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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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제12회여성인권영화제 '서로의 질문과 대답이 되어' 2018년 9월 12일(월)~9월 16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