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회상> -

 

보배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영화 <회상> 스틸 컷

이따금씩 비극을 빚어낸 무수한 동기들을 헤아려볼 때가 있다. 크고 작은 인과관계들을 하나씩 헤아려 볼 때면 이런저런 유약한 감정들이 사무치곤 한다. 그것은 트라우마와 분노, 죄책감이라는 단어가 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대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것이다. 에스테르 로츠의 영화 <회상>은 폭력의 피해자가 된 한 여성의 시선을 통해 그 고통의 무게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관객은 평화롭던 일상이 어느 사건으로 180도 바뀌어버린 한 여성의 내면 심리를 따라 그 날카로운 균열의 자국을 되짚어보게 된다.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주인공 미테는 둘째를 출산하며 휴직기에 들어선다. 남편의 출장이 겹치며 혼자 육아를 떠안게 됐지만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안정감을 느끼며 새로운 행복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휴직 신청을 위해 들른 직장에서 이전에 자주 상담소를 찾았던 데이트 폭력 피해자 미셸이 다시금 도움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듣게된다. 미테는 그녀를 걱정하며 남편의 출장 동안 자신의 집에 머무르길 권유한다. 이따금씩 심한 불안 증세를 보이는 미셸과 그녀를 찾는 프랭크, 그리고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까지. 평화롭던 미셸의 일상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며 점차 한 사건을 향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영화 <회상> 스틸 컷

영화는 출산 후 아이들을 돌보던 미테의 시간과 병원에 입원해 재활치료를 받는 미테의 시간을 뒤섞어 보여준다.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영화는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말을 아낀 채, 그저 미테가 되짚어보는 기억의 시간을 같이 따라갈 뿐이다. 그 과정 속에서 영화는 한 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폭력들을 함께 보여준다. 불쾌한 신체접촉부터 위협적인 언행과 행동까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커다란 남성의 시선 앞에서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는 여성의 공포를 세밀하게 드러낸다. 또한 주변 인물들이 피해자를 향해 쏟아내는 거침없는 대사를 통해 이들이 마주해야 하는 사회적 편견을 드러내며 이를 통해 어떻게 그들이 타자화 되는지를 표현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안고 있는 연대의 메시지가 중간중간 녹아있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영화 <회상> 스틸 컷

마치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보여주듯이 진행되던 영화가 마침내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될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우린 파이터잖아요, 당신과 나. 고무로 만들어져 벌떡 일어나잖아요.” 용기 내어 함께 가해자에 맞서고 대항하며 연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이 영화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희망이 되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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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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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레즈비언들에게 배우는 ‘빛나는 인생’을 사는 법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빛나는 인생> -

의정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여성의 땅’을 일구다

“남자와 함께 했던 제 평생 동안 그들은 꼭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어요. 저는 저만의 공간도 없었고 제 힘을 찾는 방법도 몰랐어요.” 여자들이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 ‘남자들의 세상’을 떠났다. 밴쿠버부터 LA까지, 1970년대 미국 서부해안 곳곳에 여성공동체가 생겨났다. 여자들만 모여 사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 캘리포니아 윌리츠에 ‘여성의 땅’을 일군 사람들은 그곳을 '완전히 다른 세계', '근사한 꿈의 낙원'이라고 표현한다. 이들은 땅을 함께 소유해 살며 그곳을 가부장제와 단절된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한때는 고립주의를 고수했던 적도 있지만, 40년 넘게 마을을 이뤄 살면서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도 변화했다. 오롯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모습이다. 이 ‘여성의 땅’은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벨 수 없는 곳으로, 누구나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영화 <빛나는 인생> 스틸 컷

이 구역에 레즈비언은 나뿐인가 싶었는데

캘리포니아 오크몬트에 ‘무지개 여성들’이 있다. 레즈비언 모임 ‘무지개 여성들(Rainbow Women)'에는 결혼한 지 수십 년 된 부부가 여럿이다. 24년간 함께 살았다는 한 커플은 “결혼생활 30년이 넘는 부부가 많아 우린 애송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이들이 오크몬트에 처음 왔을 땐 레즈비언 친구가 없었다. 정체성을 지키며 안전하게 살기 위해 동지를 찾게 됐다. 알고 지내던 레즈비언 친구들을 이 마을로 불러들였다. 전 애인도 이사 온 건 '안 비밀'이다. "50년 전에 친구였는데 지금 친구로 남지 못 할 이유는 없죠." 가까이 모여 사는 레즈비언 친구들은 서로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비춰주는 따뜻한 빛이다.

행복한 레즈비언들의 노년 일상

‘무지개 여성들’의 존재는 오크몬트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아직 벽장 속에 있는 사람에게도 안도감을 준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에게도 그렇다. 노년의 두 여성이 손을 잡고 해바라기 밭을 거니는 장면을 보고 생각했다. ‘동성애의 최후는 바로 이거지!’ 그동안 성소수자의 삶은 편견 가득한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외롭게 늙고 비참하게 된다’던 얘기들을 반박하는 장면들이 이 다큐멘터리에 가득하다. 서로를 닮은 얼굴로 나이 들어가는 레즈비언 커플들의 모습이 가슴을 뛰게 한다. 파트너와, 친구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평범하지만 그것이 주는 행복은 특별하다. 유쾌한 농담과 기분 좋은 웃음 소리를 듣고 있으면 덩달아 미소 짓게 된다.

 

함께 늙어가며 알게 된 삶의 가치

은퇴 후엔 뭘 하며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반려자가 죽은 뒤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노년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면, ‘빛나는 인생’의 여자들이 하나의 답을 보여줄 것이다. 이들은 서로의 버팀목이다.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함께 버텨줄 친구들이 옆에 있다. “늙어가는 게 아름답다는 것을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깨달았다”며 노년의 행복을 말한다. 서로의 삶이 빛날 수 있도록 돕고, 그로 인해 각자 ‘빛나는 인생’을 살고 있음을 안다. 주변을 돌보며 활기차게 사는 이 여성들에게 나이드는 법을 배운다.

영화 <빛나는 인생> 스틸 컷

모든 사람이 포용되는 공동체를 꿈꾸다

공동체로부터의 환대와 지지를 경험한 여성들은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발레이오에 사는 브렌다는 모든 이가 포용되는 지역사회를 꿈꾸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윌리츠의 여성들도 그곳을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계속 싸워왔다. 이들은 “의견 충돌이 있어야만 무언가 일어난다”며 격렬한 논쟁의 경험을 긍정한다. <빛나는 인생> 속 여성들은 함께 모여 살며 변화하게 됐고, 사회에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나선다. 흩어져 있던 소수자들이 모여 세상의 중심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이 멋진 일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윌리츠를 여성의 땅으로 만드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던 샐리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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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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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속에서 마주하는 현실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난세포> -

재인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미래,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은 가족계획연구소에서 장치를 머리에 연결하여 임신중단을 선택하지 않은 미래를 몇 분간 봐야 한다. 그 후에 임신중단 의사를 밝힌 여성에 한해서 임신중단이 이루어진다. 가상현실 속 짧은 미래를 마주한 후 주인공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영화 <난세포> 스틸 컷

임신중단을 선택하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죄책감

어렸을 때부터 여성들은 임신중단을 제약하는 사회의 분위기에서 성장해 왔다. 이는 임신중단을 하면 안 되는 것, ‘로 여기도록 강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난세포>에서는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학창 시절에 한 번쯤 보았던 다큐멘터리 <소리없는 비명>*에 나오는 고통스러운 태아를 보게 하는 것 대신, 임신중단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태어났을 아이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여성에게 죄책감을 부여한다.

이처럼 <난세포> 속 미래에서 여성에게 죄책감을 부여하는 방식은 현실보다 훨씬 더 교묘하며 잔인하다. 임신중단의 과정 속 태아가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한 삶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죄책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보던 영상과는 다르게 가상현실에서는 별다른 완충지대 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영화 <난세포> 스틸 컷

임신중단을 스스로선택할 수 없는 여성들

현실을 가리고, 가상현실을 보여주며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하는 미래의 모습은 여성에게 여전히 폭력적이다. 영화가 제작되었던 미국에서는 현재 임신중단이 불법은 아니지만 이를 다시 범죄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낙태죄를 통해 여성을 압박하는 현재와는 다르게, 영화 속 미래는 더 교묘한 방식으로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한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난세포>에서 오늘날의 현실을 마주하는 기시감을 지울 수는 없다. 짧은 가상현실 체험 후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까?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가상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난세포>에서 이를 확인해볼 수 있다.

 

* 해당 다큐멘터리는 일반적인 임신중단 시기보다 훨씬 늦은 임신 24주 이후의 태아의 모습을 담았고, 수술 도구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영상을 빠르게 재생하며 임신중단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전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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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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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릴까 봐 두렵다면, '어슐러 르 귄'처럼!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어슐러 르 귄의 환상특급>-

하안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이 작가의 작품이 없었다면 해리포터도 나오지 못했을 것’, ‘휴고 상과 네뷸라 어워드에서 수상한 최초의 여성 작가’, ‘미국 의회 도서관으로부터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 상을 받은 작가’, 이것들은 모두 어슐러 르 귄에게 붙는 수식어들이다. 이 전무후무한 기록들은 그가 판타지와 SF문학계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과 문학적 성과를 가늠케 하지만, 어슐러 르 귄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슐러 르 귄의 환상특급>은 이 화려한 수식어들만이 전부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기꺼이 응답하는 자세가 그를 살아있는 전설이 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백인 과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SF 문학계에 변화를 일으키다

르 귄이 소설 발간을 시작했던 1960년대는 SF소설이 주류 문학으로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시기였다. 여기에 더해서 SF문학계 자체도 백인 과학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성차별과 인종차별 때문에 여성과 비백인작가는 자연스레 배제되었다.

하지만 외계인과 우주선 등, 과학기술에 중점을 둔 하드 SF의 고루한 설정을 걷어내고 소설적 성취에 더 중점을 둔 소프트 SF로의 새로운 물결을 가져온 것 또한 이들의 성과였다. 사회적 소수자에 속한 이들은 그들의 배경과 경험을 토대로 이전까지 SF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다양한 사회 이슈, 인문학적 성찰 등을 소설에 담아내기 시작했고, 학회를 구성해 연대하며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어슐러 르 귄은 이 중심에서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이었다.

한계를 인정하고 나아갈 때, 더 넓어지는 소설 속 세계

르 귄은 오늘날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SF작가라고 불리지만, 그의 빼어난 상상력의 작품들은 때때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받기도 했다. 대표작 <어스시 시리즈>의 주인공은 남성이고 여성인물은 부수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으며, <어둠의 왼손>한 사람의 일생에서 엄마도 아빠도 될 수 있는 양성이라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했지만 이 종족의 기본 지칭으로 남성명사를 사용하여 비판을 받았다. 페미니스트로서 갈등을 느꼈던 시기들, 그 당시에 옳다고 했던 것들이 시대가 지나 틀린 것이 되었을 때, 르 귄은 이렇게 말했다.

맞습니다, 어스시 시리즈는 페미니스트 작품으로써 완전한 실패작이죠. 제가 자란 문화권 내에서 저는 여성 마법사 정도를 떠올렸어요. 앞으로는 더 배우겠죠.”

르 귄은 이 비판들을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제로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소설 쓰기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하고, 기존의 환상적인 세게관에 좀 더 현실성을 더했으며, 특권과 계급, 불평등에 대한 묘사는 더욱 세밀해졌다. 그렇게 <어둠의 왼손>의 초판 후 40여 년이 지난 2009, 르 귄은 재판본의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시 내가 여러 가지를 놓쳤으며 이제 와서는 다르게 묘사했을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란 변화가 있은 다음을 뜻한다. 나는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변화가 일어나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쓴 것은 당시의 변화 중 일부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계속 쓰고 전진한다는 것

영화 <어슐러 르 귄의 환상특급> 스틸 컷

"어떻게 작가가 된 건지 묻는데,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라 계속 썼어요. 그게 전부예요. 저의 존재 방식이었죠."

르 귄은 SF작가로서의 자신의 일에 정통했고, 동시에 시대의 변화와, 변화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맞서왔다. 2019년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모두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에 더 확신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곤 한다. 여성인권, 불평등, 자유로울 권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우리는 명명되기 전엔 존재치 않았던 것들을 무한히 마주치며 매 순간 자신이 틀렸는지, 맞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어슐러 르 귄은 이러한 고민에 빠진 우리에게 이렇게 격려해주는 것만 같다.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변화가 일어나는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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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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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작은싸움, 그 한복판에서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여성의원>-

 

지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2019년 초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는 많은 페미니스트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성 평등이라는 가치를 위해 80대인 지금까지도 소임을 다하는 미국의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의 삶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9년 하반기, 또 다른 여성 리더 '카르멘 카스티요'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여성의원>이 공개된다.

영화 <여성의원> 스틸 컷

 

어떤 것을 이루려면 싸워야 한다

카르멘은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미국 이민자이며, 동시에 여성이자 호텔 청소노동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한 정체성들의 교차지점에 서 있는 그는 자신이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속해있음을 항상 실감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카르멘의 직장인 '옴니 호텔'에서는 비백인 여성 청소노동자들에게 적은 급여로 강도 높은 일을 시켜왔다. 동네의 다른 대형 호텔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상황을 겪고 있었다. 참다못한 카르멘은 대형 사업장의 노동 착취를 폭로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하며 주변의 소수자들을 결집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강렬한 구호를 외치며 적극적으로 지역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단순히 돈을 벌 수 있는 것 이상의 변화를 일으킬 방법이야말로 정치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히스패닉 청소노동자의 정체성을 내세우며 쟁쟁한 선거 후보자들을 제치고 주의원에 당선된다.

영화 <여성의원> 스틸 컷

 

다양한 정치인의 얼굴

잠깐 정치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단어를 보았을 때, 어떤 사람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 중장년-중산층-고학력-비장애인-비성소수자-백인(한국의 경우 한국인’)-남성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인의 얼굴이란 너무나도 제한적이며, 그 제한된 얼굴들은 결국 사회적 상상력과 역량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린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카르멘과 같은 소수자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시도는 매우 유의미하다. 다양한 정체성과 삶의 맥락들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야 비로소 실효성과 생명력을 머금은 정치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즉 카르멘의 당선은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라는 보다 강력한 공적 요구의 신호탄이자, 또 다른 소수자 집단에 속한 정치인들이 등장할 수 있는 디딤돌이기도 하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성소수자 여성, 장애 여성, 빈곤층 여성, 이주 여성 등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균형 있게 대표되는 정치판이 절실하다.

영화 <여성의원> 스틸 컷

 

작은싸움이 만드는 변화

물론 청소노동자이자 주의원으로 살아가는 생활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여전히 뿌리 깊은 편견들이 카르멘의 앞을 가로막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원으로서의 활동은 그에게 여전히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싸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고작 사소한 지역 정치따위가 세상을 바꾸겠냐고 빈정댈 수도 있지만, 이것은 어떻게든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스스로가 속한 작은세상을 바꾸는 일. 그리고 실질적인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초선 기간 여러 투쟁에 참여했고, 최선을 다해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던 카르멘은 그래서 재선에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 과연 그는 재선에서 승리하여 정의를 위한 작은싸움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꼿꼿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카르멘의 이야기는 제13회 여성인권영화제(13th Film Festival For Women's Rights) <여성의원>에서 더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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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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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지는 여성, 거부하는 여성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미니 미스>, <빼라는 놈을 패라> -

한국여성의전화 9기 기자단 오늘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말을 기억하는가. 사회는 여자라만 무릇 이러해야 한다라는 기준을 정해두고, 그 틀에 맞추어 여자를 길러낸다. 여기,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힘을 가진 보부아르의 이 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기시키는 두 영화가 있다. 어떻게 사회가 여자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미니 미스>, 여자를 만들어내는 사회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빼라는 놈을 패라>.

<미니 미스>는 미스 브라질 선발대회에 출전한 후보들의 인터뷰 장면을 비추며 시작한다. 우승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후보들은 다름 아닌 3살에서 5살 남짓의 여자아이들이다. 저마다 가지각색의 드레스를 차려입고, 머리 장식을 하고, 속눈썹은 길게 빼고 입술은 붉게 칠한 아이들은 조신하게앉아 남성 심사위원으로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받는다. 바비 인형을 좋아한다는 미스 브라질 월드 베이비후보에게 한 심사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바비 인형을 닮았구나!" 그러자 아이는 말한다. "바비는 조용해요. 난 조용하지 않은데."

영화 <미니 미스> 스틸 컷

아이들은 미인 대회를 통해 여자로 만들어진다. 자신의 욕망을 죽이고 인형처럼 조용히 예쁘기만 하는 법을 익힌다. 여자라면 무릇 꾸밈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가꾸어 자신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그 꾸밈이란 입술에는 보라색이 아니라 빨간색을 바르는 거라는 것을, 말썽부리지 않고 순종하며 유순하게 굴어야 한다는 것들을 배운다.

영화 <미니 미스> 스틸 컷

그렇게 미니 미스로 뽑힌 아이는 과연 행복할 것인가?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누구의 욕망인가?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한 가지 밝히자면, <미니 미스>는 결코 아이들이 여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의 재현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반면 <빼라는 놈을 패라>는 더 이상 여자로 만들어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영화는 신체 부위에 타투를 새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넓고, 비대하고, 매끈하지 않은 피부에 검은 타투선이 수 놓인다. 시술이 끝나고 완성된 타투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RIOT NOT DIET’이라는 문구와 함께 피자 한 조각의 그림. 이것은 너희가 원하는 여자로는 살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폭동 선언이다.

영화 <빼라는 놈을 패라> 스틸 컷

영화 중간중간 무미건조한 기계 음성으로 내레이션이 깔린다. 서구 사회에서는 자본을 증식하는 데에 있어 뼈와 살이 자기 최적화를 위한 원재료가 됩니다. 몸은 미래를 위한 투자 대상이며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을 완벽히 섬기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신체마저 상품이자 투자 대상으로 만든다. 특히 여성의 신체는 더욱더 그러하다. 젊고, 매끈하고, 마르고, 윤기 나는 신체에는 비싼 가격이 매겨지고 사람들은 그러한 신체를 갖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헬스, 다이어트, 성형 등 갖가지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미디어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여성 신체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지갑을 열게 한다.

그러나 <빼라는 놈을 패라>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는 보통의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신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보통 여성의 이미지에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듯 주류에서 이탈한 자신들의 신체를 과감하고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셀룰라이트가 그대로 드러난 살결, 축 처진 가슴과 뱃살, 전혀 마르지 않은 몸매가 화면에 가득 잡힌다. 그들의 표정은 한없이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영화 <빼라는 놈을 패라> 스틸 컷

이들은 여성의 신체 이미지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요구되는 행동 양식도 거부한다. 다리를 쩍 벌리고, 담배를 피우고, ‘모든 여성은 레즈비언이야!’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른다. ‘너희가 원하는 여자는 되지 않겠다는 듯이. ‘빼라는 놈을 패라라는 제목만큼이나 통쾌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과 여성의 신체 이미지에 질린 이에게 한 모금 사이다가 되어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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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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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두려움은 우리의 용기가 되어!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캣콜링: 길 위의 성폭력> -

 

채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영화 <캣콜링: 길위의 성폭력> 스틸 컷

브라질 '파울리스타역'에서부터 '마르셀로 거리'까지.

카메라는 도심 속 보통의 길거리들을 비춘다.

길거리에서 남자들이 절 부르더니 맛있게 생겼다고 했어요

술에 취해 우버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그 상황을 이용해서 일부러 절 넘어뜨리고 제 음부를 만졌어요

공원에선 남자들이 절 핥고 싶다고도 했죠

거리를 따라 화면을 비추며 나오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저마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일상적인 길거리 모습 가운데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로 우글거리는 오프닝은 관객들에게 과연 여성을 위한 도시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바로 이것이 영화<캣콜링: 길 위의 성폭력>에서 주목한 여성들의 현실이다.

원래 여자한테 그렇게 말해요? 괴롭힌다고 생각 안해요?”

하루의 시작 혹은 끝이 되는 일상적인 거리에서 남자들의 극에 치닫는 무례함조차 일상이 되어버린 수많은 이들 중 여기, 불안에 그치지 않고 변화를 위해 분노하기 시작한 이들이 있다.

간호사를 꿈꾸는 '라켈'과 트렌스젠더 운동가인 '로사', 역사교사인 '테레사'. 사는 지역도 나이도 꿈꾸는 것도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이지만, 모두 사회의 불평등한 기준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싶은 브라질 여성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렇다고 그들이 마냥 두렵고 무섭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뚱뚱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길거리에서도, 버스에서도 꾸준히 낯선 남자들에게 조롱 섞인 '캣콜링(Catcalling)'을 받아온 라켈은 밖을 나서기가 두렵다. 인적없는 길을 지날 때 '아무도 없어서가 아닌 나를 해칠 누군가가 있을까봐 무섭다'는 로사는 항상 불안하다.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테레사는 남자들의 주목이 무섭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점차 사회와 남자들을 향한 분노로 바뀌고 그 분노는 자기 자신 그리고 나아가 여성들을 위한 변화를 이끈다.

영화 <캣콜링: 길위의 성폭력> 스틸 컷

"내가 뚱뚱해도 신경 안써요. 사회의 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죠." - 라켈

"내가 입고 싶으면 그게 뭐든 입어야 해요." - 로사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은 무섭지만 내가 원하는 길로 갈 줄 알아야 해요." - 테레사

 

브라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여성살해 비율이 높고, 게다가 국민의 86%가 공공장소에서 성희롱을 겪는 나라이다. 여성의 위치가 이리도 위태로운 현실 속에서 이들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에게 주어진 기존의 규범들을 낱낱이 파헤치고 고발한다.

캣콜링, 여성들은 그것을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고 재확인하려는 태반이라고 말한다. , 캣콜링 또한 성희롱 그 자체라는 것이다. 반면 남성들은 성희롱과 캣콜링 사이에 차이를 둔다. 성희롱은 원치 않는 말로 상대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이며, 캣콜링은 우아한 칭찬, 상대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말을 거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캣콜링을 겪지 않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인 것인가. 낯선 남자들이 던지는 말들을 여성이 원치 않는 말로 느낄지 혹은 칭찬으로 느낄지 어떻게 그리 확신할 수 있나. 결국 남성 자신들의 기준대로 느끼는 이 생각의 차이는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라켈과 로사, 테레사는 사회운동과 예술, 시 등과 같은 저마다의 방법을 통해 길 위에서의 여성폭력에 대항하고 이 도시, 공적 공간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이들을 통해 브라질의 페미니즘 기류를 비추는 영화<캣콜링: 길 위의 성폭력>은 페미니즘의 대표적 구절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를 떠오르게 한다. 여성들이 겪는 길 위에서의 위태로움은 페미니즘이라는 정치적 태동을 만들었고, 이는 도시의 정의를 다시 정립하는 그 첫 시작점을 마련한다.

두려움의 침묵 속에서 분노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이들은 끊임없이 말한다.

이 도시 안에서 우리는 그저 우리의 자리를 얻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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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 한국여성의전화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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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낙태죄 폐지를 향해! 싸우는 것을 더 이상 멈출 수는 없어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베이 베이> -

 

 윤서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중국계 이민자 여성 베이 베이가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1급 살인으로 기소된다. 기소 사유는 태아 살인. 애인과의 관계 속에서 혼전 임신을 한 베이 베이는 애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충격에 쥐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 베이 베이는 다행히도 살아났지만, 8개월 된 아이는 태어난 후 뇌사 상태가 되어 며칠 후에 산소 호흡기를 떼야 했다. 영화 <베이 베이>2012년 인디애나주에서 1급 살인으로 기소된 베이 베이라는 중국계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 <베이 베이> 스틸 컷

1973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은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여성의 임신 중단권이 포함된다고 판결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후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낙태죄는 여성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관련 법률이 폐지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미국 사회에서 다시금 여성의 임신중절을 제한하고 규제하고자 하는 흐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2년 인디애나주에서 태아 살해라는 죄목으로 1급 살인으로 기소된 베이 베이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화 <베이 베이> 스틸 컷

영화 <베이 베이>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 여성인 베이 베이의 삶을 보여주면서, 미국 사회가, 그리고 법이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준다. 애인에게 버림을 받고 우울증에 고통 받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도를 하게 된 베이 베이를, 인디애나주 검찰은 살인죄로 기소한다. 태아를 모체의 일부가 아니라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보고, 베이 베이가 아이를 살해했다며 평생을 감옥에서 살 수도 있는 죄목인 '살인'으로 그를 기소한 것이다. 1급 살인으로 베이 베이를 기소한 그들의 시선에는 베이 베이라는 한 여성의 삶은 녹아들어 있지 않다. 오직 태어날 생명과 죽음만이 그들의 고려대상이고,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베이 베이의 삶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었으면 도움을 요청했어야지. 그건 온전히 네 잘못이야."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순간, 그 순간부터 여성은 오롯이 혼자가 된다. 여성은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고,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은 ''가 된다.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과, 임신중절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과 고통에 대해서 사회는, 그리고 법은 주목하지 않는다. 임신중절이 음지화 되었을 때 여성은 부르는 게 값인, 하지만 어떠한 의료적 절차에도 개입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받아야 한다. 여성 혼자서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많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 혼자서 키우는 아이는, 그리고 그 여성은 곧바로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 된다.

영화 <베이 베이> 스틸 컷

영화는 임신 후 혼자 남겨진 베이 베이라는 한 여성의 현실과 베이 베이를 돕는 사람들, 그리고 '여성의 몸의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다시 한 번 완전한 낙태죄 폐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국의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여성의 임신중절 관련 법안들은 자꾸만 후퇴한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이해하고, 피임에 대한 접근을 확보하며,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에도 자신의 재생산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낙태죄 폐지'를 향한 투쟁을 이어나가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들과 함께, 영화 <베이 베이>는 많은 생각을 스쳐가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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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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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를 뚫고 살아남은 여자들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날아오르다> -

 

은강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영화 <날아오르다> 스틸 컷 / 사진 제공 Women Basque Institute

여자들은 왜 모였을까?

어느 날, 난 발코니에 앉아 있었고 갑자기 비둘기가 내 앞에 날아왔어. 우리는 잠시 서로를 쳐다봤고 곧 날아갔어. 멀리 날아가는 걸 보며 내게 메시지를 준 걸 알았어. 자유로워지라고 말하기 위해 왔었던 거야. 마침내 결국 난 그를 신고했어.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이 화면에 펼쳐진다. 차 한 대가 그 자연을 가로질러 달린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새 한 마리가 잠시 쉬기 위해 지상에 내리기라도 한 듯, 이내 화면은 차에서 내리는 여자들로 가득 찬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아 내리는 것을 돕는다. 이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옷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이다. 나잇대도, 옷차림도 모두 다르다. 이들은 모여 있지 않는다면 한 집단으로 특정 지어지지 않을 만큼 서로 다르고, 또 평범하다. 그래서 겉모습만 보고 이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들은 왜 모인 걸까. 영화의 주제를 짐작하기 힘든 순간이다.

그러나 이들이 입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할 때, 이 영화가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오며 관객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날아오르다> 스틸 컷 / 사진 제공 Women Basque Institute

여자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목소리' 즉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피해자에게 주어진 게 아니었다. 특히 젠더 폭력과 같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피해자는 사건 뒤에 물러나 있다. 물론 자신을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피해자도 많고, 피해자의 신분은 보호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을 둘러싼 자극적인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빠르게 그리고 널리 퍼지고, 그 속에서 피해자는 이야기를 옮기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조작된다. 모자이크되고 변조되어 '피해자'로 불리게 된 사람은 '가엾은 희생자' 정도로 그려져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심지어는 사소한 언행들로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받기도 한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가 어떤 사건의 피해자를 다루는 방식은 '피해자 보호하기'가 아니라 '피해자 지우기'가 아닌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들의 목소리로 채워지는 <날아오르다>는 그러한 피해자 지우기에 적극적으로 대항한다. 자극적인 연출이나 요란한 배경음악과 같은 군더더기를 모두 쳐내고 지금껏 은폐되었던 목소리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렇게 드러난 목소리는 당연하게도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피해자라는 단어가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자기검열의 메시지를 주는 반면, 각각의 목소리를 지닌 스크린 속 여성들은 그들 자신을 비롯한 모든 여성에게 괜찮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폭력과 재난, 눈물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삶과 용기, 행복, 연대,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 이후에도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간다는 것을 많은 이들은 간과한다. 상상하기 어려웠던 사건 그 이후에 대하여 이 영화의 여자들은 계속해서 말한다. 그것은 폭풍우를 뚫고 나가 끝내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미래를 향한 선언이다. 잠시 지상에 머물던 새는 다시 힘차게 날개를 펼쳐 세상 모든 것이 작아 보일 때까지 높이 날아간다. 땅에 발을 디디고 당당히 선 여성들도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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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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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묵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기에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네티즌> -

 

채연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흔히 인터넷 공간은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여성은 개인정보를 해킹당해 인터넷 상에 자신의 사진이 퍼뜨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반면, 남성은 아무런 두려움없이 모르는 여성에게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내온다. 익명성의 가면 뒤에서 혐오와 폭력은 더욱더 많이, 빨리, 끊임없이 퍼부어진다. 그러나 피해를 막아야할 책임이 있는 국가와 기업은 무관심하고 폭력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되기까지 한다. 그 속에서 피해자는 고립된다.

 

영화 <네티즌> 스틸컷

다큐멘터리 영화 <네티즌>은 사이버 성폭력 생존자 세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사이버 성폭력의 심각성과 제도적 무관심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에 맞서 삶을 이어나가며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결국 당신이 얼마나 그걸 신경쓰느냐의 문제가 아닐까요?”

사이버 성폭력은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로 심각성이 희석되고, ‘성폭력’이라는 이유로 사소화된다.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누가 글좀 쓴다고 해서 그렇게 큰 해를 끼치는지 잘 모르겠네요”, “결국 당신이 얼마나 그걸 신경쓰느냐의 문제가 아닐까요?”라고 쉽게 말한다. 피해자가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넘겨버리면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전 애인이거나 친밀한 사이였을 경우에 폭력은 연인 간의 다툼의 문제로, “안좋게 헤어졌나보군요”라는 식의 사소한 문제로 치부된다.

하지만 피해는 사이버 상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피해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키고 직장을 잃게 만들기도한다. 더하여 스토킹과 같이 실제로 피해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범죄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영화는 사이버 성폭력이 생존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그들의 언어로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그 심각성에 보다 더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영화 <네티즌> 스틸컷

“지옥 같은 폭풍 속에서 살아남자”

생존자 여성은 “지옥 같은 폭풍 속에서 살아남아요. 앞으로 나아갈 필요도 없고, 그저 버티기만하면 폭풍은 지나갈겁니다.”라고 말한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국가와, 피해자에게 비난을 가하는 사회 속에서 여성들은 꿋꿋이 삶을 이어가며 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연대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오드리 로드는 “당신의 침묵은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썼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는 살아남아 서로를 지킬 것이라고 소리높여 이야기하는 여성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영화는 미국의 사이버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심각성과 제도적 문제 등은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이 최근에서야 문제시되고, 비동의 유포 불법촬영물은 ‘국산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와 란희 여성인권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가 더욱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누게 될 피움톡톡 시간이 마련되어있다. 영화를 통해 문제를 직시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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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여성인권영화제 '이제 멈출 수는 없어' 2019년 10월 2일(수)~10월 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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